6. 여름에 피는 꽃. -1

군대생활 회상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잡생각으로 스쳐갈 때.

by 이규만

6. 여름에 피는 꽃.



아득한 기억에서 탈출하지 못한 심연을 더듬으려 할 무렵이었다. 그 기억은 가녀렸고 근접한 무거운 중압감이 나를 사로잡을 정도로 어두웠다.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막연해졌다.

가끔은 규율로부터 탈피하여 나름대로 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그런 한때가 잠시 오갔다. 떠들썩함이 간혹 있다가도 아침은 그렇게 고요함에 기대어 처연하기조차 했다. 은근한 소탈함을 부여하거나 까닭 없는 울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벌써 사흘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만이 뱉어놓은 갖가지 오물들을 뒤집어쓰고 냄새를 맡아서가 아니었다. 조교들의 쌍 씹은 욕들과 발길질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깜깜한 텐트 안으로 돌아와 으스러질 정도로 피곤한 몸으로 동료들을 껴안고 그대로 잠드는 것이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면서 나를 돌아볼 겨를이 필요했다. 이런 식의 훈련은 어지간하면 어떤 식으로든 구실을 만들어 빠지고 싶었다. 유격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시간적 배려가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훈련 때 다친 발가락이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장이 탈이 나 설사 중입니다. 아무리 그래봤자 중대장이 보기에는 나는 병장이었다. 최고 선참이니 밑에 애들한테 모범을 보여라. 대대가 참여하는 훈련이니 열외는 없다.

낮에는 그렇게 장정들의 악과 구호로 떠들썩하더니 야간은 깊은 적막으로 휩싸였다. 감악산을 뒤로한 채 얼마를 걷고, 또 걷다 보니 드디어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가 나왔다. 얼마를 걸었을까. 훈련복이 땀으로 젖었다. 목마름으로 입안은 바짝바짝 말랐다. 드디어 감악산을 행군해 들어올 때 봐 두었던 작은 가게의 불빛을 발견하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로 저기야. 조금만 더 걸으면 돼.

가겟집 할아버지는 나의 몰골을 보고도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군인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라 일반 가게 손님으로 맞이했다. 일반 도시에서 군복을 입고 위장크림을 바른 채로, 그것도 야밤에 들이쳤다면 화들짝 놀라는 기색에다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늦은 시각임에도 외려 반기는 눈치였다. 훈련 중에 뛰쳐나왔구나. 술 한잔을 하려고. 내가 포켓용 작은 술을 만지작거리자, 노인이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규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쓰고 또 쓰고 계속 쓰는 중입니다.

6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6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5. 상대원 블루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