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겨울비 -3

남녀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나이차

by 이규만

“형 미쳤어? 그만둬. 그만두라니까. 나이 차이도 보통이 나야지? 그네 부모들이 가만있을 거 같아? 형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건 잠깐 데리고 놀은 장난질뿐이 안 돼. 그렇게 잠깐 감정의 유희로 가지고 놀 거면 애초부터 관두라니까.”

“정말 그럴까? 나는 잠깐 그 아이를 놀리는 것뿐이 안 될까?”

“그렇다니까. 형도 걱정이지만 난 그 애가 걱정돼. 더 깊어지기 전에 그만두라니까. 서로 상처일 뿐이야.”

내가 윤미와 가까워지면서 한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 상심이 깊어졌다. 특히 자신과 연계된 지인을 소개하게 될까 봐 상당히 불안해하던 터였다. 그 와중에 종범이란 녀석도 그 상심 중에 한 부류였다. 녀석은 거래처에서 서로 알게 된 사이라 매번 일이 끝나고 저녁때 가볍게 술 한잔 하는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었다. 녀석은 입이 꽤 무거웠다. 일체 나랑 이야기한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그녀에 대해 자랑삼아 이야기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몇 년 동안 나를 보아왔기에 불장난쯤으로 치부하려 들었다.

술을 같이 마시며 그는 ‘그만두라’라는 말을 몇 번 더 한 거 같다. 심지어 원조교제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럼. 원조교제지. 나이 차가 보통 나야 말이지.

“형이 스무 살 적에 그 애는 고작 네 살이었어. 형이 서른 살 적에 고작 중학생이었어.”

“조금 더해봐. 왜? 그 아이 엄마랑 내가 나이가 비슷하다, 그러지?”

“화났어?”

“그래. 화났다. 나와 그녀의 사이를 매도하지 마. 그래도 플라스틱(플라토닉) 러브라고. 순수하단 말이야.”

“풋. 순수가 얼어 뒤지겠다. 형이 말하는 순수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그러지 말고 나한테 소개해 주는 것이 어때?”

“됐어. 술이나 마셔.”

삼십 대 초반이니 나이 차이는 덜하지. 그나마 형보다 내가 낫다. 강조하고 나섰다. 나이 차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인할 수 없었다. 말을 떠벌여야 하지 않아도 불행해지는 진로였다.

그날따라 술맛이 나지 않았다. 마시다 만 떨떠름한 기분으로 술값을 계산하고 일어섰다. 종범은 술자리를 파하고 일어나면서도 계속 투덜거렸다. 내가 네 녀석 기분 맞춰서 술 마셔 주는 사람이니? 작작 해. 누가 먼저 술 마시자고 했는데? 누가 먼저 여자 이야기를 했는데? 하기는. 내가 먼저 그랬다고 했어도 녀석이 장단을 못 맞춰 주어서 영 그랬다. 녀석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말은 바른말이었어도 한 번쯤 생각할 여지는 있지 않나. 기왕 이렇게 된 거 하소연이나 하자는 심산이었나. 뭘 기대하고 그에게 윤미 이야기를 했을까.

주말에 그녀의 집 근처인 사당역에서 만났다. 근처에서 같이 밥은 먹었지만, 그녀와 있는 시간은 짧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도 훌쩍 흘러갔다. 아쉽다. 내가 나왔던 지하철 통로로 윤미는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좀 더 길게 이어지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고 싶어. 오빠네 집 근처인 죽전역에도 가 보고. 어때. 그러자꾸나. 윤미.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가 보자고. 그녀에게 말은 안 했지만, 죽전역에 내리게 되면 단국대에 들를 참이었다. 학사주점에 들러서 술도 한잔 기울일 생각이 들자, 기대에 부풀었다. 그녀가 환자이긴 해도 한 두어 잔쯤은 괜찮겠지. 그렇게 물어볼 요량이었는데 윤미는 금방 피곤했는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다. 2호선을 갈아타고 선릉역에 내리게 하려고 강남역을 지나칠 때 어깨를 흔들었는데 매가리 없이 그녀가 옆으로 쓰러졌다. 옆자리에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반대편 어깨로 쓰러질 텐데. 정말 힘이 없이 쓰러졌다. 낭패다. 동작역에서 넘어지는 때가 떠올랐다.

“윤미야! 정신 차려! 애가, 너 왜 그래? 일어나 봐. 일어나 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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