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애들 신경 안 쓰고 이야기만 나누었다. 주로 연예인 비사(鄙事)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 통하는 말이라 봤자 대중 매체에서 한창 떠드는 일들이 공감을 이어 줄 테고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예인들이 입는 옷이나 취향 저격인 비정상적 그들 나름의 일들이 화젯거리로 이어졌다. 그런 얘기가 꼭 상통하는 면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얼굴 처음 보는 남녀가 그토록 한 주제만 가지고 오래도록 늘어질 말은 거의 없었다. 우스꽝스럽게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싫은 쪽으로 몰아붙이는 수준이었다. 서로 처음 보는 얼굴끼리 남들 이야깃거리로 한참이나 말할 수 있었던 게 신기했다. 여자는 개인사에 대한 것들은 물어보지도 않았고 자신의 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피하려 드는 눈치였다. 여자가 부담될까 싶어 나도 그런 낌새가 오려할 땐 말꼬리를 다른 데로 돌리기 바빴다. 아 참. 이름하고 나이는 안 묻기로 했었지. 그니까 그 친구가 제대하고서 아직 브라운관 복귀 신고를 않은 거군요. 어쩐지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라.
그런대로 나름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뭐랄까. 세세하다면 배려였고 자질구레하다면 내게 억지로 맞춘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야. 니들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노래하나 불러. 같이 놀러 왔으면 맞춰야지.”
한 녀석이 냅다 소리 질러 놀랬다. 조용히 있으니까 재미가 없어. 노래 부르라니까. 그럴까. 같이 앞에 나가지. 여자는 나를 쫓아 나왔다. 노래를 또 시킬까 조용한 발라드로 분위기를 꺾어 놓았다. 이루의 ‘까만 안경’ 있지. 번호 눌러. 여자는 처음에는 어색하게 두 손을 흔들다가 내게 살포시 팔짱을 꼈다. 어깨에 머리도 기대어 왔다. 사랑해요. 나도. 울고 있어요. 호- 난.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울고만 있어요. 호오-
여자가 나를 바라봤다. 친근감이 오고 갔던 것이 분명하다. 다음 만남의 기대를 은근히 고조시켰다. 여자는 눈빛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다 휴대전화의 벨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스틸하트의 쉬이즈 곤이었다. 3옥타브의 고음 부분만을 따서 벨 소리로 해놓은 녀석이었다. 영업사원이라 매번 건수를 놓치면 안 되거든. 벨 소리 음량을 최대한 해놓았어. 그래도 그렇지. 여긴 우리끼리 노는 자리잖아. 웬만하면 꺼 놓지.
“야! 조용히 해 봐. 형수님이시다.”
녀석이 마누라랑 통화를 하는 바람에 산통을 깨 놓았다. 분위기를 망쳤다. 그만 일어나자. 술맛 떨어졌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러갔나. 다들 일어났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맞받지는 못하고 아래로 떨구었다. 아쉬움이 남았다. 여자가 내 어깨에 기댈 때가 참 좋았는데.
착실한 일꾼으로 돌아갔다. 일해도 계속 머릿속에 여자만 남았다. 그러다 참다못해 이틀이 지나 혼자 가게로 향했다. 친구 본다, 허울을 만들어 놓고 실은 그 여자를 보기 위해서 갔다.
실장이랑 시시껄렁한 룸살롱 분위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간신히 부탁 조로 말했다. 여자를 불러 줘.
“그때 처음 본 여자애 있잖아.”
“누구?”
“아, 왜 저번에 내 옆에 앉은 여자 말이야.”
“그 애? 그 애는 왜?”
“좀 불러줘.”
친구 표정이 황당한 모습이었다.
“평소에 안 그러던 놈이 왜 이래?”
“그래도 친구 좋다는 게 있는 거잖아.”
녀석이 피식 웃었다. 당연히 불러줬다. 자식이 불러줄 거면 빨리 불러주지. 뜸 들이기는.
드디어 룸으로 여자가 들어섰다. 정말 보통 보는 여자애들과 다르긴 달랐다. 행동 하나하나 얌전해 보였다. 말하는 것도 틀렸다. 불쑥 담배를 건네도 절대 안 피려 한다. 정말로 안 피는 건지 남자 앞이라 조심스러워 안 피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녀는 그제야 나를 알아봤다. 아. 지난번에 저랑 이야기만 나누었던 분이시네요. 밸런타인을 온 더락으로 마시며 그녀에게도 따라 주었다. 이제 연예인들의 비사 따위에는 이제는 관심이 없었다. 앞에 있는 여자에게 기울어졌고 궁금해졌다.
“어쩌다 이 일을 하시게 됐어요.”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벌어먹으려니 이 짓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시군요.”
“…….”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동정은 절대 아닙니다.”
대화하는 동안 그 여자 얼굴만 쳐다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 홀린 것처럼 그녀에게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가까스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 몇 마디 드문드문하고 술 몇 잔 하고 노래 반주기에 맞춰 몇 곡 부르고 하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갔다. 으레 룸에 오면 하던 패턴이었다.
나머지 추가로 나온 술값을 내려고 할 무렵이었다. 내가 내민 카드를 물리면서 실장이 심각하게 바라봤다.
“너 이제 어쩔 거야?”
“뭘?”
“옹달샘이야? 세수하러 왔으면 샤워까지 해야지. 왜 간 만 보고 가?”
“무슨 소리야?”
“발기부전이야? 비아그라라도 하나 사줘?”
“자꾸 말 돌릴래? 바로 말해야 알아듣지.”
“너도 뻔히 알잖아. 내 사정. 나도 어차피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야. 그 여자애. 사장이 말이 많아. 그 애 때문에 매상이 떨어져서 걱정이야.”
겉으로는 성매매가 불법이라 아무리 떠들어도 그 속내는 기막힌 사정이 있었다.
“술 매상은 가게 수입에서 삼 분의 일도 안 돼. 수입 절반 이상이 밖으로 도는 이차에서 다 나오는 거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내가 따로 돈은 안 받을 테니까 오늘은 좀 네가 데리고 나가라. 너를 좋아하던 눈치던데. 여자애가 완전 숙맥이라 남자하고 맞출 줄도 몰라. 계속 옆에서 술만 마시고 이차는 안 나겠다고 그러고. 계속 나랑 그렇게 며칠째 실랑이하면서 버티는 중이라니까.”
룸에 오는 남자들이 전부 다 이차를 가자고 하고 그 수발을 다 들자면 가게에 여자 몇백 명이 있어도 모자랄 것이다. 이차를 다 나가달라는 말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해야 하지는 않나. 그렇지만 여자를 끼고 술만 마시고 가는 일들이 허다하다 보면 가게 매상 유지가 좀처럼 쉽지 않다. 술집 경영과 맞닥뜨린 얘기였다. 그런데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나는 여기 손님일 뿐인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부탁하잖아. 나 좀 봐주라. 지금 여자애 사정 봐주다가 내가 잘리게 생겼어. 그런 애가 중간에 끼면 다른 애들도 다 쫓아서 한다니까. 자기들이야 남자랑 안 하는 게 더 낫거든. 비록 수입이야 좀 줄기야 하겠지. 아무래도 몸으로 때우는 일이 적었으면 하길 바라지.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것도 싫어질 테고. 남자 새끼들이랑 하다가 더러운 꼴도 안 당할 테고.”
나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비용도 내지 않고 데리고 나가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다만 여자는 여자 본의에 의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장소에서 의례적으로 벌어지는 순차에 따른 일일 것이다. 적어도 그럴 것이다. 적잖이 도 반감이 들었다. 이물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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