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을 이곳에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난처한가 말인가
여기서 왜 교복 이야기를 늘어놓는 거야. 술 마시는 자리라고 하지 않았어. 분명한 말이 없으니 답답해서 달려왔습니다.
애들 교복이라도 저희한테는 생계가 절실하게 달린 문제입니다. 허허. 김 상무.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온 거지. 나는 좋은 술자리라고 해서 온 건데. 대표님. 죄송합니다. 뭐 해. 끌고 나가. 저희가 꼭 납품할 수 있게 손 써 주십시오. 아니. 그래도 저 사람이.
여기 자리 정리하고 뜨자고. 정 마담 불러. 애들 다 내보내.
대표님. 정 마담이 직접 대표님한테 설명하겠답니다.
그래. 그래. 응. 그래. 좋아. 대신 말 새어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 내 보낸 그 사람만 어떻게든 막아 보라고.
김 상무. 들었지. 정 마담 이야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손 써 놓겠습니다. 실수하지 마. 좀 전에도 그런 사단을 누가 만들었는데 그래. 정 마담은 믿겠는데. 나는 당신한테 신뢰가 안 가. 이번 한 번 만이야. 또 실수했다 가는 그때는 가차 없어.
아이고 사장님들. 죄송합니다. 불러 놓고 이렇게 대접이 변변치 않아서 말입니다. 애들 다시 오라 그래. 정 마담. 내 옆에 앉았던 애로 다시 보내 줘. 나는 그 애가 좋던데. 윤서라고 했나.
오며 가며 제법 많은 돈뭉치가 서로 오가고 할 즈음에 일행들은 불안한 눈치들이었다. 일행 중에 대표 격으로 나선 이가 정이 언니를 찾았다. 아직 여자들은 들이지 마. 한동안 그들이 실리를 챙기고 있는 동안은 성역이었다. 나와 불려 갔던 여자들은 한동안 복도에 서서 다소곳이 기다렸다. 서 있는 것조차도 고급스럽게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정이 언니가 단속했다. 애. 아직 볼일이 안 끝났어. 볼일은 화장실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높은 구두를 신고, 한동안 그렇게까지 꼿꼿하게 서서 기다리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남자들이 볼일을 다 볼 때까지 바깥에 서서 끝까지 기다리다 보니 앞꿈치로부터 통증이 몰려왔다. 종아리까지 올라가 힘줄이 땅겼다. 면접시험 보나. 이게 뭐 한 짓이야. 뭔 얘기가 길어. 대기실에 있다가 오라고 하던가.
볼 일들을 다 봤다고 불려서 들어가도 그네들이 하는 대화는 대단히 많은 은어를 포함하고 있어 옆에서 들으면 따분할 정도였다. 여자들을 불러 놓고 왜 술을 먹는지 이해 못 할 구석이 많았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은 그들이 속한 직업군이나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있다, 뿐이었다. 주로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공무원들이 많았다. 거기서 성사하는 거래나 그에 관련한 실명은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그건 ‘백화’에서 대통령 격인 옥희 언니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혀 별개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도 수긍할 수도 없었다. 대체로 그랬다.
정이 언니 말대로 수입은 꽤 괜찮았다. 매번 일급으로 받는 돈보다 손님이 주고 가는 부수입이 더 좋았다. 들쑥날쑥 수입이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이 마련될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나는 곧 조금 모은 목돈으로 내가 있을 거처를 마련했다. 대기실에서 계속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레이 말대로 옥희 언니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눈치는 보였다.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얻고 싶었지만 강남의 원룸은 방값 보증금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리고 나와 있는 방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거의 사무실 전용 오피스텔이 대부분이었다. 약간 고민하다가 거리는 조금 되는 편이지만 우이동 쪽에 방을 얻었다. 같은 서울인데도 강남이랑은 현격히 방값이 차이가 났다. 강북 쪽이 훨씬 싼 편이었다. 월세이긴 하지만 돈이 더 모이면 전세를 얻을 작정이었다. 아무래도 월세는 매달 부담이었다.
상위에 있는 손님방에 들어가려고 나를 비롯한 여자들의 경쟁은 정말 치열했다. 그래서 부수입이 좋아도 몸치장하는 곳에 거의 다 들어가니까 씀씀이가 헤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용실 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러다가 빚이나 제대로 갚을 수 있을는지. 돈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이러면 빚은 언제 갚아. 바로 다른 통장을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게 옆 건물 가까운 곳에 입금할 수 있는 CD기가 새로 생겨서. 현금으로 매번 가지고 있으면 앞뒤 없이 쓰는 것에 손이 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가 불쑥 그가 왔다. 어이가 없게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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