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름에 피는 꽃. -6

제대후에 적성에 맞는 일, 최대한 빨리 찾기- 그림그리기?

by 이규만

내가 고등학생이나 재수 시절에 늘 지켜봐도 형은 늘 혼자였던 것 같았는데 비로소 여자가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늘 곁에 있다가 이제 사 나에게 보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휘둘리지 않고 한 곳으로만 가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거였다.


가만히 서서 배겨낼 수 없었다. 서울로 무조건 내달렸다. 막일로 우선은 초조를 누그러뜨려 보려 했다. 군복을 벗어 놓은 지 이틀 만이었다.

첫 일은 집을 짓는 건축 현장에서 보호 각목을 치우는 일이었다. 시간 배당을 놓고 처음에 현장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더니 내게도 같이 온 사람이 조율했다. 두어 시간으로 끝내자는 말이었다. 보호 각목에 튀어나온 못만 주의하면 그다지 힘든 것이 없었다. 양도 많지 않았다. 다른 한 사람과 같이하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일당을 오만 원 받고 보니 꼭 거저 놀다가 받은 돈 같았다. 소개비 오천 원을 제하고 나니 사만 오천 원이었다. 돈 버는 일이 이렇게 수월하다면 다른 무엇을 생각할 겨를이나 방도를 마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아서 그런가. 부러 소개 꾼이 그렇게 일거리를 인도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음에 가정집의 타일 보조 일이 손쉽게 걸려들었다. 보조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없었다. 시멘트 개어주고 거기 담당 기술자에게 잘 맞추어 주니까 그 일도 두어 시간 만에 끝났다.

다른 날, 이 층집 가정집에 목욕탕 벽을 깨부수고 그 잔해들을 마대에 퍼 담아 마당 밖으로 빼냈다. 나이가 육십 대라고 밝힌 할아버지와 또 한 사람은 오십 대 중반으로 뵈는 남자랑 같이했다. 내가 더 많이 움직이는 것같이 쉼 없이 왔다 갔다 하면 육십 노인은 나를 붙잡았다. 천천히 해. 일은 그렇게 무작정 하는 것이 아니야. 여기 땀 좀 닦기도 하고 물도 마시면서 해. 노인 말에 같이 온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머리가 있어야지. 아직 한참 더 배워야겠어. 나는 그 말이 언뜻 이해가 안 가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요령에 대한 지침 같았는데 이내 잊어버렸다. 잡생각이 날까 두려웠다.

계속해서 짧고 쉬운 일이 걸려드는 것만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인부 관련 회사가 서울 양재역 근처라고 했을 때 반가웠다. 미경이가 근무하는 회사도 그 근처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줄곧 일을 마칠 적마다 정류장에서 공중전화부스의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고는 했다. 결국은 한 날은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고 말았다. 마침 미경은 자리에 없었고 종임이 전화를 받았다.

-어머! 승동씨세요? 어디예요? 반가워요. 정말. 미경이 지금 은행에 볼일 있어서 외근 중이에요. 나도 승동 씨. 보고 싶다. 저도 나가서 보고 싶네요. 정말 너무해요. 제대하고 한 번도 얼굴 안 보여 주기예요?

-하하. 그래요? 미안해요. 언제 미경이랑 같이 보죠. 그런데 종임 씨. 저 너무 좋아하는 거 아녀요?”

-…….

-에고. 제가 이상한 말 했나요? 미안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화났음, 사과할게요. 농담인데.

-아니에요. 미경이 들어오면 꼭 전해 드릴게요. 그리고 한 삼십 분 있다 전화해 보세요.

처음에는 엄청나게 받기고 들떠 있던 종임, 목소리가 갑자기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늘 상 미경을 대신하여 말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그녀이건만 이상하게도 나를 만나러 군대에 면회해 온 이후로 미경과 다른 또 다른 여자로 보였다. 뭐랄까. 낯설지 않은 느낌이 천천히 다가오는 거 같기도 하고 간혹 잊고 있다가도 퍼뜩 연상되어 떠오르는 기억의 잔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 보일 것도 같은.

그녀의 말대로 삼십 분이 지났을 무렵 전화를 했더니 미경이가 바로 받았다. 조금 전의 종임은 벌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아저씨. 지붕에 제이, 에스, 엘 일본어 연수원 간판 보여요?

-응. 보여.

-바로 그 건물 앞에 건물이 우리 회사예요. 그 건물 일층에 카페가 하나 있어요. 거기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제가 하던 일 좀 마무리하고 나갈게요.”

-그래, 알았어.

초조했다. 미경을 만나러 양재역까지 왔다. 카페 앞이었다. 근래의 사람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여 밝은 분위기로 실내장식을 살렸다. 큰 유리창으로 안이 훤히 다 보이도록 옷 가게 마냥 깔끔하게 잘 꾸민 카페였다. 한참을 서성거렸다. 여태껏 미경을 만나면서 여유롭게 만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시간에 쫓긴 것도 아니건만 왜 그렇게 얼굴을 보면 늘 초조한 기색으로 그녀를 반기고는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미경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가, 막노동 일을 마치고 소개비를 인력사무실에 갖다주고 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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