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분 -윤서가 병을 고치고 엄마와 남동생 종찬이랑 잘 살기를.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움직이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게 되면 아랫도리에 신경이 그쪽으로 몰려가 아파서 꼼짝할 수 없었다. 옆으로 누울 수도 없고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목이 탔다. 입안이 텁텁하게 말랐다. 물을 먹고 싶었다. 움직여서 물을 찾아야 하건만 몸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고 간호사에게 소리쳐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목도 잠긴 상태라 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몸의 상태로 인해 곁눈질뿐이 안 되어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몸을 돌리려고 뒤척이려면 아래에 굉장한 통증이 몰려와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있는 힘껏 과한 통증을 다스리며 겨우 옆으로 누웠다. 영수 오빠였다. 그럼 그렇지. 그가 팔짱을 끼운 채로 쪽잠을 자는 상태였다. 새근새근 자는 그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온갖 근심을 쓸어안은 표정에다 그냥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백화에서 꺼내 주고 것도 모자라 나를 돌보는 그가 안쓰러웠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베개 앞으로 타고 내려갔다.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수액주사가 독해서 그런지 마취약이 독해서 그런지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잠이 쏟아졌다.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전에 나를 진단해 주었던 의사를 만났다. 여의사는 나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궁 안에 종양이 자라고 있어요. 제법 크네요. 의사는 내게 시한부를 선고했다. 젊은 나이에 무분별한 성 접촉이 문제라고요. 또 상기시켰다. 근래에 피를 굉장히 많이 쏟은 적이 없었나요. 얼마 전에 화장실에서 생리와는 다르게 너무 많은 피를 쏟은 적이 있긴 있었죠. 전에 시술한 루프도 제구실을 못 해 임신이 된 흔적이 보이네요. 피를 쏟을 때 아마 그 핏덩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저절로 사산된 것 같습니다. 그녀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됩니다. 정밀검사를 받아야 해요. 악성인지 양성인지 빨리 파악해서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이 덜해요. 이렇게 아프나 저렇게 아프나 고통은 똑같을 텐데. 나는 소같이 눈만 껌벅껌벅하고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먹은 것 같이 굴었다. 의사만 쳐다봤다. 소견서를 써 줄 테니 다른 큰 종합병원으로 가보세요. 싫습니다. 싫다고요. 퇴원이나 시켜주세요. 고집을 부린다고 해결 날 일이 아니에요. 김 윤서 씨. 나는 머리로 도리질했다. 얼마나 돈을 우려내 먹으려 큰 데로 가래요.
병원비가 문제였다. 도대체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원무과에서 봉 잡았다고 생각할 거 아니냐고요. 돈이 문제군요. 병원비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암 치료는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어 환자들한테 혜택이 많게 보장이 되어있습니다. 전에 같이 환자가 전적으로 다 부담하는 것이 아니에요. 바뀌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사기 치는 것 같은데. 그녀는 날 설득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하여튼 완전 공짜는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어느 정도 환자가 부담은 해야죠. 그래서 싫습니다. 공짜가 아니라서.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다른 방도를 찾아볼게요. 돈 한 푼 안 들어갈 수 있게요. 나는 슬며시 웃었다. 그녀의 처절함이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봤자 포기한 나로서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쓰지 말아요. 선생님. 고마워요. 시기가 많이 지난 것 저는 알고 있다고요. 그녀는 잡은 손을 풀고 날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귀엣말로 속삭였다. 검사받아야 해요. 꼭. 완전 공짜로요. 원무과에서 돈 내라고 하면 내가 내줄게. 윤서 씨는 십 원 한 장 내지 마. 근데 왜 우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
자취방에 돌아왔다. 목에 깁스도 풀은 상태였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영수 오빠가 나를 바라봤다. 그는 다른 별말이 없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오빠의 표정이 유독 어두워 불안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고만 했었다.
그는 날 지켜봤다.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슬픈 눈으로. 자꾸 그런 눈으로 볼래? 그럴 거면 돌아가. 그가 자꾸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이 싫었다. 좀처럼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는 것을 바라보고 무슨 희망을 품을까. 부질없었다. 의사 말대로 다른 병원에 가자. 오빠 말에 내가 부득부득 고집을 부렸었다. 돈도 없는데 무슨 병원이야. 집에나 갈 거야.
그는 날 보다가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넘겨주었다.
“너 가게에서 처음 본 날 생각나.”
“그때가 언제였는데?”
“미역 한 뭇씩이나 들고 다른 한 손은 가방 질질 끌면서 가게에 온 날이었어.”
“아. 그날. 내가 친구랑 있던 자취방에서 나온 날이었는데. 애 지우고 얼마 안 된 때였어. 그랬구나. 오빠는 그날 날 처음 봤구나. 나는 그런데 오빠를 그때 왜 못 봤지?”
“내가 화장실 청소하고 나왔는데 네가 보였고…. 무척 불안해 보였어. 쫓기는 상태같이. 그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고.”
“별것도 아니고만. 궁금했어. 오빠 이름표는 웨이터들이랑 왜 다를까. 엘살바도르 붉은 저녁? 표면이 누렇게 바래졌던데. 오빠가 그들 중에 대장이니까 색다르게 보이려고 맞춘 거야?”
“여기 본래 사업자등록이 백화가 아니고 엘살바도르였어. 별거 없어. 새로 바꾼다, 하다 그대로 차고 다니다가 여태껏 온 거야. 붉은 저녁은 내가 애칭으로 붙여달라고 한 거고. 술은 항상 저녁 지나, 밤에 먹으니까 새빨간 저녁이라고 하긴 그렇잖아. 여기 일하는 여자애들이 예쁘고 화려하잖아. 거기에 너도 포함된 거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