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름에 피는 꽃. -8

눈물이 벌써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by 이규만

미경이의 생각이 아닌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라도 최소한 그녀에게 주어진 규칙을 빨리 정하길 기다렸다. 물론 남녀 사이에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안 좋고 보기 싫은 모습들을 보여 줄 날이 더 많다는 것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느껴왔다. 그래서 이제 그녀한테는 더 이상의 실수나 다른 성격의 치부를 보이기 싫었다. 그런 의도를 나타내려는 의도도 포함된 셈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모질게 마음먹지 못하고 군 생활이 힘들다는 엄살을 부리고 그녀를 부단히 도 괴롭혔다. 그리고 그 괴롭힘으로 죄의식을 갖고 다른 한 편으로는 즐겼다.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를 또 늘어놓고 있다.

너절해질 대로 너절해졌다. 나름으로 생각도 정리했건만. 미경을 만나 이야기라도 들어봐야겠다. 기어코 회사에 전화했다.

“미경을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어요. 제가 면회하러 혼자 갔었을 당시에는 정말 많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사실은….”

전화를 받은 이는 바로 종임이었다. 이미 미경은 회사를 관둔 상태였다. 종임으로부터 들었다. 차라리 잘됐다. 잘됐어. 이제는 속 시원하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완전히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가만히 멍해진 채로 섰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였다.

-잠깐만요. 제 말 듣고 계셔요? 승동 씨 저 좀 볼 수 있나요?

종임 말에 망설였다. 간절한 목소리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예전 내가 군에서 첫 휴가를 받아 처음으로 미경에게 전화를 걸어 들었던 것과 비슷했다. 한참 들떠 있는 목소리였다.

쯔바이 카페에서 종임은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가다듬어져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군대 간 남자를 삼 년간 그리워한 여자를 곁에서 지켜봤던 장본인이었다. 그녀도 여자이기에 다르게 말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랑과 가깝고 곁에서 지켜보는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정말 그럴까. 진실한 사랑이라. 그럼 가짜 사랑은 뭘까. 가짜 사랑은 비교 대상만으로 있는 건가. 말하지만 지금 미경이와 내가 가짜 사랑이 아닐까. 입으로 떠벌리지만 정작 대 놓고 말할 수 없는 가짜 이야기.

“제가 혼자 면회하러 갔었던 이유는요. 그날 회사 직장동료인 진철 씨와 미경이가 스키를 타러 갔었기 때문이었어요. 미경이가 아팠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어요. 그렇게 꾸민 것이었지만 스키장에 갔었던 것은 미경이의 의도가 정말 아니었어요. 그 남자의 적극적인 구애가 원인이에요. 미경이도 자신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에 무척 죄책감에 사로잡힌 것 같았어요. 진철 씨가 차를 집 앞까지 대절했나 봐요. 결국에는 내게 전화해 왔어요. 같이 면회를 가지 못할 것 같으니 취소하자고 말이죠.”

종임은 잠시 이야기의 맥을 끊고 머뭇머뭇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두 손으로 무릎을 토닥거리면서 종임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 심정이 어땠는지 아세요?”

“뭐, 무척 잘 됐다 싶었겠군요.”

“왜요?”

“아니, 그냥 뭐 다들 쉬는 일요일에 사생활도 즐기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가 동료와의 약속이 취소되었으니 그 사생활을 돌볼 겨를이 생겼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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