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적(幽寂)하다. -1

한 번 불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축 처지고 말았다.

by 이규만

7. 유적(幽寂)하다.



상처 부위가 아물어 실밥을 뽑을 때가 다 되었나. 간호사가 상처에 바짝 달라붙은 붕대까지도 다 핀셋으로 걷어내 살점을 뜯어내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팠다. 실밥을 뽑을 적에 간호사의 툭툭거림이 날 더 괴롭게 만들었다. 간호사는 거침이 없었다. 엄살이 뭐 그리 심해요? 이런 것도 못 참나. 남자의 오기를 추키기도 했다. 남자가 이런 것도 못 참으면 어째요? 나중에 어쩔 건데? 가보면 알겠지. 내가 뭐 어떻게 될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이 밉상 간호사야.

의사는 누차 강조했다. 손가락이 다 낫고 내가 예전에 집게손가락으로 해왔던 섬세한 정상적 생활이 내 의지에 달려 있음을.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없는 반복과 연습으로 나아질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툴기도 하겠지만 예전에 해왔던 극히 정상적 생활에는 아무 하자가 없다. 예를 들면 젓가락질이나 펜을 쥐고 글씨를 쓰는 일. 혹은 집게손가락으로 전문적으로 해왔던 일들을 일컬었다. 많은 훈련을 요구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나는 그때 스패출러를 쥐고 할 아이싱이나 짤 주머니를 들고 그리는 섬세한 데커레이션 작업을 생각했다.

처음에 집게손가락을 감싼 붕대는 엄지손가락 굵기에 두 배가 넘었지만, 차츰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갈아 줄 때마다 크기는 줄어들고 간소화되어 갔다.

통원 치료를 해도 되겠네. 퇴원해도 됩니다. 의사 말이 나오자마자 병실을 깨끗이 정리했다. 병원 글씨가 박힌 환자 옷도 벗어던졌다. 남아 있는 내 흔적들을 싹 지우고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한편으로 집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내 모습을 상기(上記)하기에 부질없는 탄식조차 하기 싫었다.

퇴원은 해도 물리치료가 아직 남았다. 물리치료실에 가니 전에 간호사와는 다른 여자였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였다. 간이침대에 누워 상처가 아문 손가락에 백열전구 열을 쬐었다. 잔뜩 굳어있던 피부가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다음에는 파라핀이 녹은 용액에 손가락을 담갔다. 그 용액이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

물리치료를 담당하는 간호사는 상냥하였어도 환자 응대할 지침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그것이 그녀 일이니까. 주사 놓고 실밥을 뽑았던 담당 간호사와 별로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치료받는 동안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어떤 일 하다 이렇게 다쳤어요?”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그러기에는 창피했다. 거기에 그럴 위험한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게 말로 구차하게 늘어놓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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