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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만 Aug 03. 2023

벙거지를 위한 사상누각(砂上樓閣)

벙거지


어차피 사상누각(砂上樓閣)이었다. 나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매너리즘에 대한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만 투덕거리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왔지만 역시 안 되던 것이 잘 될 리 없다. 원래는 벙거지 쓴 남자 크로키를 써 갈 계획이었다. 혹시나 쓰다 막힐 것 같아 ‘나는 술집 여자였다’ 같이 끌어들인 거였는데 벙거지보다 술집에 손이 더 간다. 술집도 보니까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일 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훌쩍 흘렀는데 아무것도 진전된 성과가 없으니 낭패이다.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는지 나 자신에게 되묻고 싶다.

소설을 쓰다 보면 막힐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술집 여자였다’(엘살바도르 붉은 저녁)를 떠올렸다. 술집도 처음에 시작할 때 엉망이었고 시놉시스조차 없이 무턱대고 시작했었다. 술술 그대로 써진 것은 별로 없었다. 일하면서 썼었다. 그러다 몇 달 쉴 때 매일 보정동 카페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시놉시스를 고치고 그 시놉을 의지해서 연달아 써내어 결국 맨 뒷장까지 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뿌듯했었다.

결국 몇 달 익혀두었다가 읽어보니 엉망이었다.

굉장한 비문에다가 반복된 문구와 부사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아주, 다시. 단어들이 들어가면 무조건 지웠다. 금지어 철칙에다 넣고 읽다가 눈에 띄면 지웠다. 지금 술집은 그런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벙거지는 초고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쓰고 싶다. 장편소설은 소설가에게는 성장을 알려주는 메시지와도 같다. 한층 더 나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벙거지 시놉시스를 보면 나는 또 다른 성장의 기쁨을 맛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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