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40이에요.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있고 남편은 낚시기구 판매 일을 하다 망한 후 집에서 술만 마셔요. 딸 진희는 아직 1학년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아빠가 술에 취해 있으면 아빠 놀아줘 아잉, 하며 애교를 부려요. 그러면 아빠 동식은 그래, 그래하다 이윽고 귀찮은 듯 잠에 빠져요.
진희는 아빠 앞에서 시무룩하게 물러나요. 이런 생활도 하루이틀이지 계속되다 보니 집 안에 궁기가 들었어요. 남편은 정신을 못 차리고 연일 술뿐이었어요. 저는 어떻게든 견뎌보려 했지만 한계에 달했어요. 취직자리를 구해 나섰죠. 가정이 무너지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어요.
지하철역 근처 편의점에 취업을 했어요. 시간은 오후 두 시부터 열 시까지. 조금 서툴렀지만 단순한 일이라 금방 배울 수 있었어요. 순조롭던 편의점 알바가 두 달쯤부터 꼬이기 시작했어요.
가장 우려했던 사건이 벌어진 거죠. 그건 남자들의 꾐이었어요. 남자들은 저를 그냥 두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치근덕거렸죠. 그중에 가장 저를 귀찮게 만든 사람은 두 칸 건너 있는 황 집사였어요. 안경점을 경영하는 그는 독신이었어요. 황 집사는 처음엔 물건을 산 후 인사만 하고 가더니, 차차 본색을 드러냈어요. 여러 가지를 잔뜩 사서 꼭 한 두 개를 저 먹으라고 놓고 갔어요.
근무 3개월째.
그날도 그가 아이스크림 두 개를 놓더니 먹으라는 거예요. 저는 작정하고 말했죠.
왜 싫다는데 자꾸 주는 거예요!
그가 웃으며
호의잖아요.
하며 또 웃었어요
아무리 호의라도 상대방이 싫다는데...
저의 이 말에 그는 약간 당황하며
예, 예 이젠 안 줄게요.
하더니, 약간 허가 찔린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어요. 저는 계속 출근을 했고, 어느 날 안경점에 붙은 임대 광고를 봤어요. 별 관심 없이 그곳을 지나치곤 하다 어느 날 소문을 들었어요
골수 기독교 신도였던 황 집사가 출가해 중이 돼 있다는 소리를. 누군가를 엄청 사랑했는데 그녀에게 차이고 충격을 받아 머리를 깎았다고 하더군요. 또 뒤늦게 들은 거지만 그 여인이 길음동 25시 편의점에 근무하는 여자라고 했어요. 저는 그 여자가 저라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조용히 일을 했죠. 황집사에게 약간 미안했지만 저에겐 가정이 있었어요.
평화는 얼마가지 않았어요. 황 집사 안경점을 인수한 백 권사가 저를 괴롭혔어요. 백 권사도 처음엔 인사만 하더니 어느 날부터 퇴근 시간에 차를 대놓고 저를 기다렸어요. 제가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어요. 백권사는 상당한 재력가라는 소문이 있었어요. 저는 그의 차를 타지 않았고 근무 10개월 만에 사표를 냈어요.
남편은 나중에야 제가 출근을 안 하니까 낮술 값은 이제 못 주는 거냐면서 벌겋게 취한 볼을 흔들어 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절어 코를 골아대는 남편을 바라보다 화장을 하고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어요.
미금동이요.
나는 택시기사에게 말했어요
기사가 도심 속을 달렸어요
미금동엔 백권사가 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