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by 남상봉

중학교 때 엄마는 매일 도시락 반찬을 김치만 주셨다. 나는 그게 부끄러워 김치와 밥을 남겨다 방과 후 집에서 먹었다.

우리 학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고기반찬을 싸 오는 이촌동. 김치만 싸 오는 용산동. 물론 나는 용산동이었다. 선생들은 이촌동을 비호하고 용산동을 천시했다.

나는 거의 매일 담인인 상학이 에게 이유 없이 얻어맞았다. 여하튼 친구도 용산파 이촌파로 나뉘어 있었고 공부 못하고 가난하면 싸움이라도 잘해야 했다.

나는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게다가 싸움까지 못 해 그야말로 동네 북이었다. 매일 선생에게 얘들에게 얻어맞고 코피 나 질질 흘리고 가면 엄마는 나가 뒈지라고 욕을 했다.

아무튼 엄마는 내가 얻어 맞든 터지든 김치 도시락을 싸 주셨고 나는 그것을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먹었다. 3년 내내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동료들이 부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활이 어려워 생활전선에 뛰어든 나의 처지가 비관스러웠어도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김치 대신 이촌동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때리는 선생이 없었고 코피 터지게 싸울 대상이 없었다.

고등학교만 못 갔지 돈이란 걸 만질 수 있었다. 열심히 땀 흘려 일이란 걸 하자 부끄러운 김치만 먹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을 누리는 자유.

그 자유를 나는 일 해서 얻는 대가로 누리며 열심히 살았다. 상급학교는 못 갔어도 이 사회의 자본이 굴러가는 흐름을 빨리 파악한 나는 지금 중소 기업체 사장에 가수를 겸업하고 있다.

keyword
이전 28화가난과 티 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