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분석과 대안 마련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을 즈음,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 넣어두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왜 직장암이었을까?”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곧바로 시작될 치료에 집중하느라 이 물음에 마음을 둘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수술을 앞두고는 암이 사라졌다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마주했다. 그 모든 과정은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맞춰 치열하게 대응해 나간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 대신 추적 검사를 받으며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때 다시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나의 삶 속 어떤 요인들이 암이라는 병으로 이어졌을까?”
복용 중인 약도 없었고 나름 건강하게 살아왔다. 음식과 운동 관리도 꽤 철저한 편이었다. 내 기준에서 나는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주변 사람들도 “너처럼 관리하며 사는데 왜?”라며 나보다 더 당황해했다.
가장 먼저 오랫동안 누적된 만성 수면 부족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키우고 일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시골에서 자라 부지런함이 몸에 밴 나는 그런 분주함을 당연하게 여겼다. 몸은 버텨냈지만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날들이 많았고 결국 정신력으로 버텨온 셈이었다. 이런 누적된 피로가 면역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빠는 8년 전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1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의학적으로 암의 유전 확률은 약 5% 정도로 가족력이 내 암 발생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엄마는 내가 암 진단을 받기 6개월 전, 폐렴으로 입원하신 지 불과 3주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어떤 준비도 할 수 없었던 뜻밖의 이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별 사이에는 긴 시간차가 있었지만, 두 번의 장례를 치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큰오빠로부터 두 차례 깊은 모욕과 상처를 받았다. 그때도 나는 늘 그랬듯 이성적으로 감정을 다잡으며 일상을 이어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부모님과의 이별이 남긴 상실감과 충격,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들과 깊은 스트레스가 내 몸 어딘가에 쌓여 결국 병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게다가 나는 평소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식단과 운동도 꾸준히 챙겨 왔다. 그래서 몸이 지쳐간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건강하다고 믿으며 지냈다. 하지만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 몸은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늘 즐거웠지만 몸은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만성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은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깨뜨리고, 만성 염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장시간 앉아 있는 생활은 그 부위에 지속적인 부담을 더했을 것이다. 여기에 중금속 노출, 미세 플라스틱, 전자파, 대기오염 같은 환경 요인까지 겹치며, 내 몸의 균형은 조금씩 무너졌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함께 직장암 발병에 한몫했을지 모른다.
이어서 떠오른 것은 근골격계와 순환, 호흡의 문제였다. 몸의 구조적 불균형이나 기능 저하가 오랜 시간 누적되며, 특히 직장 부위에 부담을 준 것은 아닐까. 정렬이 흐트러지고 움직임이 줄어든 채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그 부위에 무언가가 서서히 쌓여갔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호흡’이 떠올랐다. 얕은 호흡과 상복부 근육의 단축, 그로 인한 횡격막 호흡의 제한은 내 몸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비효율적인 산소 공급은 회복을 더디게 만들고, 어쩌면 암세포가 더 자라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암세포는 저산소 상태에서 더 잘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내가 무심코 지나친 호흡 하나가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비로소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치유와 회복은 보완대체의학(통합의학) 혹은 기능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내 삶과 몸을 깊이 들여다보며 가능성의 단서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했다.
그것은 수면의 질을 높이면 면역력이 살아난다는 믿음, 근육과 자세를 바로잡으면 호흡과 순환이 달라진다는 가능성, 무너진 장내 환경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마음이 평온하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장내 환경과 면역력, 만성 염증 같은 내부적 문제뿐 아니라 근골격계의 불균형과 순환, 호흡 같은 구조적 기능까지 몸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며, 스스로를 관찰하고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눈에 보이는 증상뿐 아니라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습관과 내가 살아온 환경까지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특히 나는 내 몸의 구조를 보다 정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혼자서 감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행히 오랜 경험과 실력을 갖춘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내 몸의 정렬과 기능을 하나씩 점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치유 과정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또한 모발 중금속 검사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한 사이 몸속에 축적되었을지도 모를 독성 물질이 면역 기능이나 세포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했다.
또한 기능의학 병원을 찾아 필요한 정밀 검사를 몇 가지 받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 몸의 부족하거나 불균형한 부분들을 하나씩 찾아 실제 생활 속에서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내 몸을 위한 실질적인 전략이자 매일의 실천이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삶의 방향을 다시 세워가기 시작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내 몸과 마음에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갔다.
음식과 영양, 운동, 수면, 마음을 돌보는 시간, 호흡과 순환, 몸의 구조와 움직임에 대한 이해, 일상에서 독소를 멀리하기, 기능의학적인 접근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암 공부까지.
이 모든 것들은 어느새 나를 지켜주는 힘이자,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래서 루틴을 새롭게 만들었다. 회복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이 쌓인 결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켜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나를 깊이 이해하고 돌보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 예전과 같진 않지만 지금의 나답게. 매일 다정하고 성실하게 나를 회복해 나가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그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나누어 보려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실천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과 변화들을 겪었는지를 담아보려 한다. 나의 경험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길 위에서 작은 도움과 응원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써 내려갈 ‘지속가능한 건강 관리‘ 중,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음식이다.
암 환자에게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다. 치료를 돕고, 면역을 키우며, 무너진 몸과 마음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자 시작점이었다. 예전에는 그저 하루의 일부였던 식사가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상인 이 이야기부터 꺼내려 한다.
*사진: 서울대병원 tv 대장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