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슬퍼한다. 단어가 생각이 안 나. 우리가 그때 봤던 드라마 제목이 뭐였지, 이러다 정말 치매 오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엄마, 괜찮아. 그런 걸로 치매 오면 나는 벌써 중증 치매 환자야. 나는 친구들 만나면 대명사로 말해. 그 있잖아, 그래 거기, 그럼 친구도 그래. 아, 나도 알아. 거기 있잖아. 그래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이름은 생각 안나는 거기.
엄마는 단어가 생각이 자꾸 안 난다고 시무룩해 하지만 나는 우리 엄마보다 똑똑한 60대 여성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내가 만난 어떤 상사보다 일을 잘하고, 깨어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엄마는 매일 우리에게 새롭고 다른 음식을 해주기 위해 유튜브를 본다. 다섯 살, 한살이 아닌 서른다섯과 서른하나의 아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고 퇴직을 했기에 나보다 엑셀에 더 능하고, 아빠보다 주차를 잘하며, 처음 접하는 기능에 도전 정신이 강하다. 배울 때는 느릴 수 있지만 혼자 힘으로 도전해보고 싶어 하고 결국 숙지한다. 1000피스 퍼즐도 뚝딱, 2000피스 레고도 뚝딱(조카 말로는 레고 천재), 공구도 잘 다루고 무언가를 조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이케아에서 아무 고민 없이 무언가를 골라온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에 다다른다. 아빠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잘하는 것 모두 아빠가 못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어릴 적 가정통신문 같은 곳에 존경하는 인물을 적는 칸이 있었다. 장래희망에는 발레리나를 썼었고 존경하는 인물에는 늘 엄마를 적었다. 학교에 가보니 친구들은 세종대왕, 링컨, 대통령 등 공인을 적어왔다. 엄마라 적은 사람은 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엄마는 소소한 행복을 채우며 산다. 냉장고에 달걀을 가득 옮겨 담으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다 하고, 나와 같이 매주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와 냉동실에 채워 넣는 것도 행복하다 한다. 길을 걷다 이름 모를 꽃 이름을 새로이 알게 되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사준 흰색 운동화는 아껴신는다고 계속 전에 신던 밑창이 얇은 운동화를 신는다. 길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심지어 광고에서도 음악이 나오면 몸과 발을 좌우로 흔든다.
이렇게만 쓰면 꼭 엄마의 인생이 평탄해 보인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수복 아씨라 불렸다. 목숨 수 자에 복 복 자. 일찍이 엄마를 잃었고, 엄마 대신이었던 큰 언니도 잃었다. 폐가 좋지 않아 병원 생활을 하느라 학교를 일 년 늦게 들어갔고, 살아가는 내내 아팠다. 화장실에서 물통을 가득 채울 만큼의 피를 토하는 장면은 내 어린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결국 폐 절제 수술도 하고, 몇 년 전엔 암수술도 받았다. 그래도 엄마는 웃는다. 곱고, 예쁘게 늘, 웃는다.
어릴 적 엄마에게 약속했다. 커서도 엄마랑 살 거라고. 나이 먹고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도 같이 살고 있다. 옆에 있던 언니는 엄마랑 살지 않겠다 했고, 약속대로 멀리 떨어져 산다. 엄마, 그러니 괜찮아. 엄마는 치매도 귀엽게 올 거야. 나보고 누구세요, 하면. 열 번이고 말해줄게. 제가 댁의 따님입니다, 하고. 매일 엄마의 발이 좌우로 흔들거릴 수 있게 음악을 틀어줄게.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