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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Sep 08. 2022

어떤 마음으로 거봉을 사 왔는지

과일을 밥보다 좋아한다. 거봉, 딸기, 복숭아, 수박, 사과 등. 그리고 우리집에서 과일을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상하게 과일을 사다 놓아도 다들 잘 먹지 않는다. 동생은 냉장고의 과일을 보고, 누나 꺼 아냐?라고 할 정도다.


환절기가 돼서 그런가, 급하게 몸이 안 좋아졌다. 컨디션이 저하되고 숨이 가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며칠 계속되자 결국 입맛도 없어져 버렸다. 하루에 한 끼를 물 말아서 대충 먹거나 계속 커피만 들이키는데, 오늘은 아빠가 마트에서 거봉을 사 왔다. 내가 좋아하는 거봉. 아빠는 한알도 먹지 않을 거봉.


아빠는 그 시대, 50년대를 대표하는 사람답게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사람이다. 다른 아빠보다 덜 상냥하고, 더 엄한. 우리에게 태어나자마자부터 '아빠'대신 '아버지'란 단어를 가르쳤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나는 아픈 뒤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버지를 아빠로 부르는, 아빠의 아픈 새끼손가락이다.


아빠는  그랬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한참 지나서 와서는 말없이 초콜릿 봉지를 던져주고 가버리거나, 장난으로라도 사랑한다는 소리 한번   없다. 대신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애쓴 것은 안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기에 어릴 때는 남들과 다른 아빠에게 섭섭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빠의 얼굴에 주름이  생길 때쯤부터, 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부터, 아빠는 우리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커버린 터라 아빠의 작스러운 관심이 달가울  없었다. 그렇게 아빠와는 여전히 멀지만 가깝고,  가깝지만  사이로 지내고 있다.


어제는 물말은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거봉 한송이를 다 먹었다. 나 역시 아빠에게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 아빠의 그 딸이랄까. 하지만 껍질만 남은 그릇을 보면 아빠가 분명 좋아할 것을 안다.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거봉을 사 왔는지도 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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