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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Sep 16. 2022

우리가 했던 약속들은 어디에

- 가을이네. 또 창경궁에 가자.

- 올해가 지나기 전에 또 바다 보러 가야지.

- 나중에 여기 와서 같이 먹자.

- 다음 주에 일산 한번 들릴게.

- 내년에도 또 여기 오는 거야.


살면서 수많은 약속을 했다. 크고 작은. 어린날에는 그 약속에 함부로 영원이란 단어를 보탰다. 약속은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꼭 지켜야 하는 것. 꼭 지켜져야 하는 것. 지킬 수 없으면 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 약속들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리고, 뻔한 말장난이 되어버리면, 가끔은 꼬여버린 마음으로 우습기도, 세상이 무너진 듯도 했다. 그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무엇이든. 그걸 알게 되고 나서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려 했다. 가벼운 말들을 주고받지 않았고, 남이 던지는 빈말에도 진지하게 답하려 했고, 밥 한번 먹자라는 다정한 말에도 속으로 언제? 진짜? 하며 상대방의 진심을 살폈다. 그렇게 복잡하게 살던 나이가 있었다. 복잡하게 살기에, 놓치는 게 더 많았던 나이.


이제는 복잡하게 살지 않는다. 약속에 영원을 담지도 않는다. 쉽게 깨져 버리면 쉽게 또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약속을 마구 만들고 싶어 진다. 조만간 아침 10시에 여는 동네 브런치 가게를 친구와 가기로 했고, 추워지기 전에 바다를 또 보러 가기로 했고, 작년 가을에 창경궁이 너무 예뻤기에 창경궁에 또 가기로 했다. 10월 마지막 날에는 강화로 새우를 먹으러 가기로 했고, 제주에 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쥐치 조림을 먹어보기로 했다. 가을바람맞으며 야외에서 노닥거리던 기억이 좋아 시원한 바람이 불면 광화문 그곳에도 가기로 했다.


이제는 놓치지 않기 위해 약속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네가  좋아하는 만큼 많은 약속을 만든다. 너와  사이에는 이런 약속이 있어. 마치 무슨 증표처럼. 모두 지킬  없을지라도 빼곡히 만들어 품어 놓는다. 그리고  기대로 산다. 우리가 종류가 다른 브런치를 시켜 나눠먹고, 단풍으로 물든 창경궁의 호수를 바라보고, 바다 앞에서 캠핑의자에 앉아 바다를 구경하고, 새우 껍질을 까며 올해 새우 진짜 ,말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내게 또 무언가 약속을 해올 사람들을 안다. 나는 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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