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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Oct 05. 2022

10원으로 케이크를 사 오던 동네

일산에는 5살에 왔다. 신도시가 되자마자. 그전까지는 서울에 살았는데,  동네는 신기한 곳이었다. 어쩌면 다정의 뿌리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언니는 매번 10원으로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왔다. 나는 놀다가 약국에 들어가 손을 내밀면, 약사 선생님이 손에 올려주는 동그란 노란 비타민을 먹었다. 이게 무척이나 당연했던 동네. 물론, 아빠는 언니가 10원으로 가져온 케이크 값을 퇴근길에 매번 지불해야 했지만.


나는 그 동네의 서점 집 둘째 딸내미였는데, 집에서 서점을 가기 위해서는 시장을 지나쳐야 했다. 지나가는 길 모두가 불렀다. 백설이라고. 새하얀 얼굴 때문에 백설이. 내가 지나가면 두부 할머니는 꼭 불러서 어떻게 두부보다 더 희냐, 하며 마치 친손녀처럼 안아주곤 하셨다.


서점 골목 끝에는 삼촌이 하는 카센터가 있었다. 그 시절 동네의 모든 사람들은 다 언니, 오빠, 삼촌, 이모였다. 미끄럼틀은 없지만 넓은 공터인 카센터 주차장에서 우리는 주로 숨바꼭질을 하거나 언니 오빠들이 하는 땅따먹기를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 놀다 밥 먹으라는 엄마 말에 서점으로 돌아와, 단골 백반집에서 배달 온 음식을 맛있게도 먹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꼬막무침을 좋아하게 된 것이.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는 따뜻한 차나 커피를 타서 시장 할머니들께 가져다 드리곤 했다. 서점 구석 의자에 앉아서 발을 흔들며 멍 때리고 있으면, 좋아하는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를 차지하려고 달려오는 언니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겨울이면 한가운데 난로 위에 밤을 구워 먹었다.


그 동네를 5살에 떠났고, 초등학생 이후에는 아빠가 서점을 접었으니 갈 일이 없었다. 그러면 이제는 흐릿해져야 하는 기억인데 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또렷해질까. 이미 모든 게 달라져있을 동네인데 왜 그대로일 것만 같을까.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시장길을 걸으면 누군가가 날 불러 세워 볼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을 것만 같은 건 어디서 오는 향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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