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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Nov 21. 2022

해가 지기 전에 I 03

단편 소설


03.


복도 창가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커피가 담겨있는 텀블러를 든 채. 사람들이 지나가면 벽에서 등을 떼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벽에 등을 기댔다.


겨울이 되면 흑백의 시야로 바라보기 좋은 계절이   같았다. 조금 외롭고, 애처로운 계절.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겨울은 화려한 계절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연말이 다가오니 백화점의 외관이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되었고, 사람들 역시 두꺼운 외투는 짐이 되지도 않는다는  미소를 머금고 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에서 나만 흑백이었다. 불빛이 반짝반짝하는 것은 보였지만,  빛이 노란빛인지, 붉은빛인지,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는 구분할  없었다. 며칠  병원에  가서 약을  왔다. 여전히 진전이 없자 담당 선생님은 스트레스받는 일을 읊어보라 했고, 나는 그저 미소 지으며 다음 달에  오겠다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몇 달 전, 아빠의 생신 식사 자리였다.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한 것은 나였다.  


“색맹 아니고 색약.”

“색약?”

“응. 다른 거야. 특정한 색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건 색약, 어느 색상을 아예 다르게 인지하는 게 색맹. 나는 청색이 잘 구분이 안돼.”


걱정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차를 마시기 전에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은 것을 보고 물었기에 답했을 뿐이다. 아니, 사실은 아주 조금은 걱정이나 위로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앞에 앉아있던 부모란 이름을 하고 나를 낳고, 키우고, 보살핀 두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연구원일에는 지장 없는 거니?”


이게 아빠.


“연구원 사람들 한테 너무 말하고 다니지 마. 흠잡혀.”

이게 엄마.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한쪽 다리를 못쓰게 돼도 그럴 것 같지? 다리라 일에 지장은 없으니 다행이다. 너무 안 좋은 일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마라.”


남편은 위로랍시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도 같을걸.”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는 왜 그동안 그런 말을 당연시 여기며 들었을까, 하고 내 속에서 이제까지 없던 질문들이 꿈틀거렸다.


탕비실로 돌아와 텀블러를 씻고 따듯한 물에 티백을 넣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세상의 모든 색을 흑백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검은색과 흰색만 있는 세상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 엄마, 나 주말에 집에 갈게. ]


답장은 보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린 집이었다. 그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도, 오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 말로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 엄마, 아빠는 전혀 상상도 못 할게 뻔했다. 현관문 앞에 서서 도어록 번호를 누르려고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번호조차, 애정에 비례하는 것인가. 나는 이 집에 이제 애정이 없어서 모두 잊은 것인가. 이상한 의미부여를 하며. 벨을 눌렀다. 문을 연 엄마가 나 혼자 온 것을 확인하며 남편의 안부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가 흐르는 물에 손을 씻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엄마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내가 보낸 원두로. 연구원 근처에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서 가끔 원두를 사서 집으로 보낸다. 아빠와 엄마는 커피 향으로 시작하는 아침을 좋아하니까.


“아빠는?”

“서재에”


서재 문을 노크하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빠의 수북한 흰머리가 제일 먼저 보였다. 안경을 살짝 내려 나를 보더니, 책을 덮고 거실로 나왔다. 우리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에티오피아 원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한 모금만 더 마시고 말을 꺼내야지. 다음 한 모금. 한 모금만 더. 결국 커피잔의 바닥이 보였다. 커피를 마셨는데도 입이 바짝 말라왔다. 나는 아침에 전남편과 나눈 메시지를 다시 상기시켰다.


[ 결전의 날. ]

[ 같이 안 가도 되겠어? ]

[ 각자의 부모는 각자가 알아서 하자. ]

[ 이혼을 하니까 사람이 달라지네. ]

[ ㅎㅎㅎ ]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달라지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이란 것을 지고 싶었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많지 않았기에 무언가가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여행 숙소의 주인도 떠올렸다. 모든 부모가 어떠한 형태이든 자식의 행복을 바란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면, 나의 부모도 그걸로 되었다 해주길 바라며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집 앞의 놀이터를 지나니 전화벨이 울렸다.  

[ 잘 다녀왔어? ]

[응.]

[말은 잘했고?]

[사실 있잖아. 나는 좀 기대했다? 내 부모가 나를 그렇게 키운 것은 이유가 뭐든 사랑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내가 어떠한 결정을 내려도 결국엔 내편이 되어주지 않을까. 근데 아니었어. 아닌 부모도 있는 거야. 내가 지금 나의 이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듯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도 있는 거야. ]


그는 나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여있는 것이 느껴지는지 물었다.


[ 괜찮아? ]

[ 괜찮아지겠지. ]


짧은 통화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욕조에 따뜻한 물부터 받았다. 세면대에 있던 분홍색 솔트를 살짝 물에 풀고, 왜 이런 옷을 입고 다니냐며 핀잔받은 후드티를 벗었다. 엄마는 옷차림새에서 그 사람의 교양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교양 같은 거 원래 없는데. 그래서 늘 집에 갈 때는 최대한 단정한 차림으로 갔다. 내 나이대에 맞는 옷. 격식 있는 옷차림. 받아진 물에 몸을 담궜다. 하루의 피곤이 물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이혼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마치 큰 프로젝트 때 하는 발표처럼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손이 바들거렸지만 양손을 포개어 꼭 쥔 채로. 돌아온 것은 이러다 눈이 아니라 귀도 이상해질 만큼의 큰 호통이었다. 나는 아빠의 호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역시 그런 결정을 둘이 내렸다며 교양 없는 말을 내뱉었다. 엄마, 교양은 차림새가 아니라 말에서 오는 것 같아. 내가 오늘 느꼈어. 나는 욕조에서 그 자리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여행지의 주인 여성에게도 답했다. 그것 봐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물속으로 머리를 끝까지 담군 채로 숫자를 열까지 세고 다시 나왔다 또 다시담궜다. 나올 때마다 마치 누군가에게 답장을 하듯 마음속으로 읊었다. 마지막은 아빠였다.


가족은 상처를 주면 안 된대 아빠. 보통 가족은 가깝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관계라 생각해서 더 상처 주기 쉬운데, 남보다 가족이 준 상처가 더 극복이 어렵대. 기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기대했나 봐. 나를 이해해 주기를. 이것을 나의 성장으로 인정해주기를. 아빠, 나는 너무 상처받아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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