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 로지 Nov 14. 2022

해가 지기 전에 I 02

단편 소설


02.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색색의 단풍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는 듯 자취를 감췄고,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나무들로 거리는 황량해졌다. 그리고 그 겨울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휴식이었다. 들어본 적은 있었다. 전남편의 어릴 적 기억에 있던 곳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표정이 꽤 좋았어서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고 작은 마을. 가기 전 주변 숙소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여행지로 잘 찾는 지역이 아니라서인지 몇 개의 민박만 존재했고, 괜찮은 숙소는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이곳 하나뿐이었다.


담장이 낮은 한옥 앞에 차를 주차하고 뒷자리에서 가벼운 배낭을 하나 꺼내자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 이름을 물었다. 예약자 확인차인 듯했다. 배낭을 들어주겠다는 제스처에 고개를 저으니 남성은 손바닥으로 문을 가리켰다. 행동은 친절하지만 표정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동그란 문고리를 밀며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 여성이 반겨주었는데, 온화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단정한 차림새와 말투에서 어쩐지 교양이 묻어 나는 그녀는 어디서 왔냐 던 지, 여행으로 온 거냐던지, 다른 말은 묻지 않았고, 단 하나의 질문만 했다. 밥은 먹었냐고. 순간 남에게 오늘의 안녕을 확인당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울렁였다.


한옥이어서 좋았다. 자주 가는 북촌의 카페도 한옥이고, 한옥을 보면 왠지 모를 마음의 안정감이 생겼다.  물론 서촌, 북촌의 신식 한옥보다는 구옥의 느낌을 일부러 많이 살린 듯 한 한옥이었다. 오래된 나무 느낌이 나는 나무판의 결을 괜히 쓰윽하고 만졌다. 주인집은 건너에 있고, 나의 숙소는 독채였는데 시간이 어두워지자 사람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바람이 창문을 건드는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바닥이 뜨거워 잠시 엎드려있었을 뿐인데 잠에 들었다. 불편하게 자던 자세를 고쳐 일어나 방안에 준비되어있던 컵에 보리차를 따라 마시고 나니 창문 사이로 독채와 중앙채 사이로 중정이 보였다. 그리고 나무 한그루도. 걸치고 있던 가디건에 팔을 집어넣고 밖으로 나가 나무를 찬찬히 살폈다. 오래되어 보이진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밖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있을 때, 주인 여성이 등 뒤의 창문으로 인기척을 내었다.


“자리끼 가져다 놓으러 갔는데 안보이시길래”

“아, 바람 쐬러 잠시 나왔어요.”


여성은 내 옷차림을 훑더니 다시 들어가 두꺼운 담요를 가져와 등 뒤로 덮어주고 자리에 함께 앉았다. 귤 하나도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어색해서 앞을 보았지만 시야에 걸쳐 보이는 얼굴로 보아 엄마의 나이보다는 조금 젊은 듯했다.


이 작은 마을까지 어떻게 왔냐는 말에, 그냥 여행을 왔다 말했다. 작고, 조용하고, 예쁜 동네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아이가 있냐고.


“사실, 이혼을 했어요.”


여성은 갑작스러운 나의 고백에 놀란 듯했지만 내게 그런 기색을 표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눈길이 조금 더 따뜻해졌는데 불쌍하다거나 안쓰럽다는 눈길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 눈길을 받아들였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이어서였을까. 모의 면접이라도 보는 마냥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는 이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그늘에서 컸어요. 평생. 안전하기도 했지만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 볼 수 없는 그런 그늘이요. 남편도 비슷한 사람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둘이 살다 보니 알았어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게 살아왔음을.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성인이 아니었고, 여전히 큰일이 닥치기라도 하면 우리는 어린아이들 같았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 아빠에게 전화부터 하는 그런 어린아이말이에요. 여전히 보호자에 서로의 이름이 아닌 부모의 이름을 적어야 할 것 같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났기에 문제를 알았고, 그러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었는데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있어서인지 잘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이혼. 어른이 되기 위해서. 둘 다 스스로 처음으로 내린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를 우리가 잘 받아들여보자, 했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한 우리가 우리에게 내린 벌이랄까요.”


중년 여성의 숨소리조차 크지 않았기에 귀 기울여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대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목소리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을 때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는 여전히 없어요. 어떻게 말해야 이해하실지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화를 내시지 않을지도 모르겠고요.”


여성은 한참 나의 이야기를 듣다 입을 떼었다. 자신은 아이의 행복을 살피지 못한 순간들을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몇 가지의 일을 겪으면서 그 이후로 아이가 무엇을 하든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아이가 무슨 결정을 하든 행복이 따르길 바란다고.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아마, 어느 부모 마음이든 같을 것이라고.


그 말을 들으면서 그녀의 말을 어느 정도 수긍은 했지만 뒤에 말은 믿지 않았다. 어느 부모 마음이나 같진 않다. 세상의 사람들이 다양하듯 부모의 모양도 다양하니까. 나의 부모가 그렇지 않았고, 나의 전 남편의 부모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겪고 나서야 생각이 바뀌었다는 다른 부모를 보니, 어쩌면 나의 부모도 그래 줄까 하는 기대는 생겼다. 그날의 밖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여성의 손은 따뜻했고, 우리의 대화는 다정했다. 그리고 여전히 내 눈은 마치 흑백 사진처럼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치 과거 여행을 하는 느낌으로, 한옥 중정의 나무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방으로 돌아와 남편, 아니 전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그곳에 와있어 ]

[ 어디? ]

[ 당신이 말하던 곳. ]

[ 아. 어때 좋아? ]

[ 응 작고, 예뻐. 예쁜 마을이네. ]

[ 잘했네. 혼자? ]

[ 응. 있잖아. 우리 잘한 것 같아. 이혼. ]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


굳이 헤어진 남편과 이혼을 잘했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한번 더 우리 결정에 확신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진심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혼 결정을 하고 준비하면서 평소에 하지 않던 메시지들을 주고받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같이 겪는 청소년기의 친구처럼 굴었다. 사실, 이렇게 사이가 좋으면 이혼을 물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우리에게 사랑은 애초에 없었고 우정 비슷한 것만 있었기에. 그리고 부모가 둘러놓은 담장을 모두 부시려면, 우리의 만남 역시 부서져야 한다 생각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그에게 중정에서 찍은 나무 사진을 보냈다. 겨울은 나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좋은 계절이라 생각하며. 모든 색이 사라져도 결국 어떠한 색도   있음을 믿으며. 바닥의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잠에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해가 지기 전에 |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