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01.
비가 한번 세차게 내린 뒤로 가을은 어느새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곧 계절이 바뀔 거야,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걸을 때마다 발에 노랗고 붉은 낙엽들이 채일때마다 신발에 눌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일부러 더 소리 나게 낙엽을 밟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선생님. 요즘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아서요.”
“잠은 잘 주무시나요?”
“전과 비슷해요.”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가방에 넣고 사거리에서 서서 신호등을 바라봤다. 위에가 빨간불, 밑에가 초록불. 어떤 색인지 구분할 수 없어도 길을 건너는 건 쉬웠다. 단풍의 색이 옅어져도, 신호등의 색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져도, 이미 익숙해진 것들이라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처음에는 후천성 부분 색약이었다. 단순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했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색이 점차 약해져 갔다. 마치 힘을 잃는 듯이. 최근에는 잘 구분이 가던 적색조차 명도의 차이가 느껴지자 오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른 것이다. 담당 선생님은 이제는 부분 색약에서 전색약으로 진행 중인 것 같다 했다. 나는 생각지 못한 인생의 또 하나의 악재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원에 복귀해 탕비실에서 물 한잔과 약봉지를 찢어 약 세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빈속이었지만 위장약이 포함되어있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번 더 뜨려고 하니 지연이 벽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선배, 저희 커피 사러 갈 건데 드실래요?”
“음..”
“점심 드셨어요?”
“아니, 바빠서 못 먹고 왔네.”
“그럼 뭐 사다 드릴까요?”
“음..”
“라떼랑 샌드위치 사다 드릴게요!”
“그래, 고마워.”
고민하다 또 대답을 빼앗겼다. 멍청하진 않았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학점으로 졸업했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 연구원일은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싫어한다 말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연구에만 몰두하면 되는 일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일반 회사에 갔으면, 내 몫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도 가끔 했다. 매일 아이디어를 내야 하거나,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가 아닌 연구실에서 시간과 싸움하는 이 직업이 어쩌면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일지도 몰랐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이상하게 주저하게 됐다. 그것이 이렇게 작은 커피 메뉴 결정일지라도.
TV에서 누군가가 나와 산다는 것은 계속해서 선택을 하는 것이라 했다. 그럼 살고 있는 것인지, 살고 있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논리라면 애초에 나는 삶을 포기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선택할 일을 최대한 만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 사람들은 선택을 즐겨했고, 선택의 폭이 넓으면 더 즐거워했다. 밥 먹는 것부터 해서, 커피 마시는 것까지, 어딘가를 가고, 누군가를 만나고 선택의 연속인 시간들을 잘, 아주 잘 살아내고 있었다. 그 시간들을 매번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나 혼자였다. 선택의 앞에서는 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이 고질병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는지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대신해서 모든 선택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어떤 대학을 가야 할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누구와 결혼을 언제쯤 해야 할지, 심지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도.
남편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종로에 에니시라는 레스토랑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연구원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어서 매우 정신이 없었고,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결혼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아빠에게 애초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단 한 번도 내게 결혼이 하고 싶은지,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 평일 저녁 시간을 내라는 통보만 전했다. 그래서 억지로 나간 그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연구실에서 뿔테 안경을 쓴 채 가운만 벗고, 단화 스니커즈를 신은 채로. 나 역시 상대에게 시큰둥했지만, 상대도 내게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의 첫인상은 잘 다려진 옷에, 그늘짐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 그게 다였다. 혹시나 아빠 귀에 안 좋은 소리가 들어갈까 봐 바빠서 옷차림이 이렇다고 죄송하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더니, 그제야 그는 내 옷차림을 살펴보는 듯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일 때문에 이렇게 입은 거라 대답했었다. 그 말이 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본인도 이 소개에 관심이 없음을 나타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당시 후자로 생각했다. 서로의 부모가 얽혀있는 관계여서 인지 우리는 최대한 예의 차리며 행동했고, 몇 번의 데이트를 더 했다. 이어지는 만남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같은 사랑이 있는 것도 아녔다. 그래도 우리는 결혼했고, 2년을 꽉 채우고 몇 주전 이혼했다. 그늘짐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전 남편이 되었다.
그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좋은 사람인 편에 속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도 길 고양이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무척이나 표정이 없는 사람인데, 그럴 때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말 수가 적은 편이지만 TV에서 마블 시리즈를 해주면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해도 그 세계관을 설명하느라 목소리의 볼륨이 높아졌다. 그 덕분에 나는 마블 시리즈의 순서를 외웠다.
그런 사람과 왜 이혼을 했냐 묻는다면 확실히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우리가 뒤늦게 어른이 아님을 알아서랄까. 가족을 형성하고 가장이라면, 아니 구성원이라도 된다면 양쪽 누구든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결혼 생활에서 크고 작은 선택들은 늘 뒤를 따랐다. 집안의 행사를 둘 다 가야 할지부터, 양가 부모님 명절 선물은 뭐가 좋은지, 환갑 식사는 어느 장소가 좋을지, 그리고 아이를 원하는 양가에 어떻게 우리의 불임을 말할 것인지 까지.
이혼의 이유를 불임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 나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에 큰 실망은 없었으니까. 그저 이 것을 어떻게 부모님에게 말하느냐가 더 큰 관문이었다. 그도 나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이런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누가 더 앞장서야 할지 주저했다. 결정적으로 그 일들은 우리가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님을 자꾸 상기시켰기에, 우리는 어른이 되기로 했고, 그 방법으로 이혼을 골랐을 뿐이다. 물론 이 바보 같은 말을 우리 둘 말고는 누구에게 전한 적은 없었다.
805호 연구실로 가는 복도에는 큰 창가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해가지는 걸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점점 변해가는 흑백의 시야로 나는 여전히 노을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