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 로지 Jun 02. 2022

퇴사 한 달 차가 하는 전 직장 뒷담화

브런치 인기글의 반이 퇴사 관련 글이다. 며칠 전 엄마와 엄마 친구분의 대화가 생각난다.

“우리 아들 퇴사했어.”

“어머, 우리 딸도.”

“글 쓴다고 요즘 집 앞 카페 가서 매일 글 써.”

“그거 유행이야?”


퇴사가 유행이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IMF 세대다.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었다. IMF는 우리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교훈을 주었으니까. IMF는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편해져서 퇴사를 한다기보다는 어차피 벅차고 힘든 세상 하고 싶은 일이 라도 하고 살자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게 아닐까 싶다.


퇴사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번아웃이 와서, 창업을 해보고 싶어서 등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현실적인 이유는 이직이고. 여하튼, 퇴사 관련 글 중에서 회사 뒷담화를 하는 글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해본다, 내 얼굴에 침 뱉기. 사서를 그만두고 외국계 기업에 8년간 근무했다. 내가 퇴사를 한 이유는 다른 것은 없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렇다면, 행복을 막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 일하는 만큼의 보상이 따르지 않았다. 매년 연봉 인상률이 말도 안 되는 수준. 그래서 성과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해 열일 했지만 그것마저 코로나로 인해 2년 동결.

- 보상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했을 때 코로나로 인해 잘리는 직원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상사의 마인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직원들에게 대 놓고 해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 방송 관련 업계로서 밤낮이 없었다. 새벽에도 잠에서 깨 자주 전화를 받아야 했다.

- 공휴일이 월요일이나 금요일인 경우에는 무조건 근무 / 명절에도 이틀은 근무

- 월요일 업무량이 말도 안 되게 많아 주말에 미리 일을 해놓아야 한다.

- 신입 사원을 기껏 가르쳐 놓으면 도망간다. 우리는 누군가가 못하겠다고 도망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

- 직원들이 하나둘씩 못 버티고 나가는데 대신 뽑아 놓은 신입 사원들도 도망가니 결국 남은 사람들의 업무량은 2배가 되었다.

- 사실, 이 모든 것에 대해 회사가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점점 늘어나는 업무량을 해내는 것을 회사 측에서는 당연시 여겼다.


적어 놓고 보니, 왜 8년이나 다녔는지 모르겠다. 네네, 제가 미련한 사람입니다 하고 자기소개를 한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직장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엔 재미있었고, 나중엔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했고, 언젠가부터는 잘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다녔고, 이제는 이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입사 후 일이 조금 벅차다 싶을 때는 ‘대리’만 되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다 진짜 대리가 되면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내가 주도해서 일처리를 할 때 뿌듯함도 느끼고, 후배를 돌봐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그렇게 몇 년 다니다 책임감의 무게가 따라올 때는 또 그만두고 싶다. 그래도 어찌어찌 참다 보면 또 ‘과장’이 되고. 과장이 되면, 이제는 이 경력을 버리고 다른 업종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또 몇 년을 다니는 것이다.


내가 다닌 회사는 3년마다 2주 리프레시 휴가를 준다. 3년, 6년, 9년, 12년. 이 기간이 아주 적절하여 다들 “리프레시까지만 버티자.”라는 생각을 하며 몇 년을 더 다닌다. 나 역시 그랬다. 내년 여름이면 9년을 채우고, 2주 동안 긴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동안 퇴사 욕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1년을 더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퇴사 결정은 무척 한 순간이었다. 주말이었나, 월초에 쏟아진 신규 광고로 인해 정신없이 집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시간을 일하느라 다 보내고 오후 5시가 될 때쯤 창 밖을 봤는데 봄이 너무나 예쁘게 피어있었다. 봄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바로 다음 날이 되자마자 팀장님께 퇴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만두고 싶다.”를 동료들과 200번은 넘게 말한 것 같고, 속으로는 한 1000번 정도 했으려나. 그 말을 상사에게 했을 뿐인데, 진짜가 되었다. 퇴사준비는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인사팀 직원과의 면담을 앞두고 작성해야 하는 질문지를 보았다.


우리가 당신을 놓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점은?
이 회사의 장/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더 많았지만 대충 이 정도의 질문들이다. 인사팀 직원과 마주 앉아 이미 내일로 예정되어있는 퇴사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여전히 수고하는 남은 동료들을 위해 나름 비장하게 회의실로 들어갔다.


인사팀 직원과의 대화 중 인상 깊었던 것을 몇 자 적어본다.


첫째, 경력이 너무 아깝다. 이직하는 곳이 없다면 더 다니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한가. 말을 번복하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다시 다니겠다 하면 우리는 땡큐다.


둘째, 힘든 것 안다. 하지만 우리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 더 참아 보는 것은 어떠한가.


셋째, 나는 스타트업에 있다가 코로나로 스타트업이 힘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이직했다. 연봉을 줄이면서 까지 왔다. 대신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 있는 우량주 느낌을 얻었다. 연봉이 문제라면, 블로그나 유튜브나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 부캐의 시대다.


넷째, 코로나가 끝나도 스마트워킹으로 전환될 건데 그럼 더 편하지 않겠냐.


다섯째, 이 모든 걸 입사 8개월 차 인사팀 직원이 내게 얘기하고 있었다.


사회적 체면 때문에 반 밖에 답을 하지 못했다. 더 날 것으로 대화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여기에다 토로해본다.


첫째, 말을 번복할 일은 없다. 이직이 정해지지 않은 직원을 잡아 두려는 말일 수 있겠지만 무척 예의가 없는 말이라고 느낀다. 이 일을 8년 넘게 하고, 나름 이 분야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직원이 이직 자리도 없이 그만둔다고 할 때는, 이유가 무엇인가 회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의 퇴사가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둘째, OOO코리아, 회사명 뒤에 코리아가 붙는 외국계 기업 중에 진짜 외국계 마인드를 따르는 회사는 몇이나 될까? 일단 내가 다닌 곳은 아니었다. 시스템이나 결정들은 미국 본사에서 하지만 어차피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인이고, 반 이상이 한국인 임원들이다. 말만 외국계고 뼛속까지 한국계인 회사였다. 우리의 불만은 모두 미국 본사 탓으로 돌리고, 같이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하는 회사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실망해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는가.


셋째, 같은 회사 안에서도 사업부마다 연봉이 다른데, 내가 속해 있는 사업부는 연봉이 적은 편에 속한다. 우리는 줄일 연봉이 없다. 인사팀이면서 혹시 이 것을 모르는가? 모른다면 반성해야 한다. 연봉 대신 워라밸이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우리는 공휴일에도 일하고 시스템이 터지면 새벽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한다. 직장인이 왜 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는가. 꿈? 서른다섯이다. 결국은 돈이다. 내가 일 한 만큼 보상이 따라오지 않으면 더 이상의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많이 보지 않은 업계임에도 코로나를 이유로 모든 승진과 연봉이 동결되었다. 그것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그 전은 달랐을까? 코로나 전에도 우리는 업무량만큼의 합당한 보상을 받은 적 없다. 연봉이 불만이면 부캐를 만들라고? 이게 회사에서 할 소리냐.


넷째, 코로나로 2 이상 재택근무를 하며 재택근무가 주는 장점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가끔 오피스에 출근하게 되면 건강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5 반에 일어나 지옥철을 타고 1시간  동안 출근을 한다. 오피스에 나가서 친한 직장 동료와 모닝커피를 사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며 오전 내내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 동료와 정하고, 그날 내게 주는 보상으로 맛있는   식사를 한다. 오후에는 동료의 짜증 나는 일에 같이 화내 주다가 서랍의 간식을 꺼내먹고 다시 지옥철을 타고 퇴근을 한다. 지치는 하루의 일상이었을 뿐인데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출근해서 직장동료들과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삶인가.’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재택근무는 일만 하다 하루가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상사들은 스마트 워킹을 하게  우리에게 좋지?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으면 한다.


다섯째, 8개월? 이 회사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이 회사의 마인드, 절대로 바뀌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안다.



나는 인사팀 직원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이 대화는 무쓸모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 열심히 답을 적은 질문지의 종이가 아까웠다. 내 앞의 많은 퇴사자들이 분명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나갔음에도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 붙였다. 제발,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 연차의 직원들이 왜 하나둘씩 나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기업의 마인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윗분들이 제발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남아서 열심히 버티고 있는 나의 동료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이상 뒷담화 끝.


작가의 이전글 서른 다섯 미혼 여성이 친구 결혼식을 대하는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