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무지개 I 03

연재 소설

by 오 지영


우리는 스물여섯에 결혼한 어린 부부답게 매일 싸움거리를 만들었다. 어쩌다도 있었고 간혹 일부러도 있었다. 정호의 자취방에서 살 때와는 달랐다. 치우지 않으면 내 일이 되었고, 모든 것이 잔소리의 대상이 되었다.


“분리수거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몰라? 비닐 다 뜯어야 한다고.”

“바나나 껍질 네가 여기다 올려놨어?”

“치우려고 했어. 진짜야. 내가 치우기 전에 네가 와서 꼭 잔소리를 하잖아.”

“잔소리하기 전에 치우면 되잖아.”


그렇게 몇 년을 투닥이며 지냈을까. 신기하게도 서른 살이 되자 모든 생활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집에서 서로 해야 할 것을 알았고, 미루면 안 되는 것들을 알았다. 그 후로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퇴근 후에는 산책을 했고, 분리수거 날에는 꼭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주말에는 주로 고전 영화를 봤고, 서로 보는 책을 보며 그게 책이냐 하고 비판했다. 결혼하고 6년이 지났을 때쯤, 정호가 말을 꺼냈다.


“아이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결혼한 부부가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토록 조심스러운 일이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정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게 이야기했다. 생각을 아예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감히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왔다. 은연중에 그 생각을 정호에게도 가끔 비쳤다.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지 못한 내가 누군가에게 어른으로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까. 없을 것 같았다. 사랑받지 못했는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이런 내가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 한참을 대답도 없이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하는 나를 보고, 정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고, 우리도 가족이 되었고. 이모와 이모부도 너에게 가족이 되어주었고, 사랑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꼭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손의 온기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가진 첫아이의 태명을 초록이로 지었다. 엄마가 날 그렇게 불렀을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불렀다. 아이가 태어나서 태몽을 물어보면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얼마나 나를 싫어할까 하며 웃었다.


초록이는 건강하게 태어나 지호라는 이름을 얻었다. 보통은 지혜 지를 쓰던데 땅지 자에 부를 호 자를 썼다. 땅에서 부른 아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곧게 가지를 뻗어 나갔으면 했다. 짓고 보니 불용 문자에 속해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한자라고 했다. 나중에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면 어쩌지?라는 내 말에 정호는 별일 아닌 듯 커서 바꾸라 하지 뭐. 한자만 바꿀 수도 있잖아,라고 했다. 책장에 책들이 어수선하게 꽂혀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 답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지호를 낳고 지호를 낳은 것을 열두 번쯤 후회했다. 매일 울었다. 아침에도 울고, 낮에도 울고, 저녁에도 울고, 밤에도 울었다. 아이가 울면 같이 울고, 아이가 울지 않으면 나 혼자 울었다.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엄마도, 이모도 다 아이를 낳았는데 왜 나만 이토록 힘들다고 유난을 떠는 것인가.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우는데도 안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우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이모가 들어와 아이를 들어 달랬다. 영현이 와서 기저귀를 갈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저 창문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하루는 그만 울라고 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쳤다. 이제 막 태어난 지 50일이 지난 아이에게. 마음에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큰 구멍. 이모와 영현이 달려왔다. 아이를 안지 않았다. 둘은 달려와 동시에 나를 껴안았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안고 함께 울었다. 언제나 나를 안는 둘을 그날은 나도 안았다. 내 두 팔로 이모와 영현을 힘껏 안았다. 마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처럼 그렇게 둘에게 매달렸다.


100일의 기적은 정말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아이는 나의 후회와는 상관없이 건강하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돌이 될 때쯤 아장아장 걸음마를 걸으려 노력하는 아이를 보며 미안했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볼을 만지며 매일 밤 고해성사를 했다. 엄마가 널 낳고 후회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이의 발에 입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이모는 한참 동안 우리 집에 미역국을 가져다주었다. 전복 미역국, 성게 미역국, 옥돔 미역국. 온갖 종류의 미역국을 그때 다 먹었다. 미역국을 핑계로 집에 와서는 청소를 했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거실을 돌아다녔다. 아이가 태어난 지 150일이 지날 때까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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