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무지개 I 04 (완)

연재 소설

by 오 지영


지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제 말이 조금 통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어 생활이 조금 편해졌을 그때쯤, 나는 또 아이를 가졌다. 정호는 내가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형제 같은 건 없어도 괜찮다 했지만 나는 지호에게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한번 해봤으니 두 번째는 어렵지 않다고,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고, 나중에는 거의 생 떼를 부리듯 졸라 가진 아이였다. 그리고 지호에게 불렀던 것처럼 똑같이 초록이란 태명으로 불러주었다. 마침 봄이었다.


임신 25주. 누가 봐도 임산부처럼 배가 불러왔다. 예정일까지는 3달이 남았었다. 무리한 스케줄을 잡지도 않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을 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록이는 뭐가 싫었는지 내 배에서 방을 빼버렸다. 한순간에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그때의 나는.


벌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지호를 낳고 후회해서, 지호를 낳고 돌보지 않아서 아이를 빼앗아 버린 거라고. 나 같은 사람은 가족이 될 자격이 없어 앗아간 거라고. 병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몇 주가 지났다.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어느 날은 괜찮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호를 돌보며 지나가는 날도 있었고, 유치원 버스 앞에서 배웅을 하는 내 배에 지호가 입을 맞추고는 “초록이도 잘 있어.” 하는 그 말에 집에서 하루 종일 우는 날도 있었다.


지호에게 아무리 초록이는 하늘나라에 갔어,라고 설명해도 지호는 다음날이면 초록이를 찾았다. 초록이가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은 내 배가 홀쭉해지고 나서부터다. 지호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엄마 배에 정말로 초록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인사를 하지 않았다.


원래도 잘하지 않던 SNS는 아예 지워버렸다. 다른 친구들의 행복한 일상을 볼 자신이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친구들이 몇 있었다. 육아 정보와 안부를 서로 주고받고 했는데 곧 태어날 아이들을 사랑을 담아 볼 자신이 없었다. 지호의 유치원 친구 엄마들을 마주할 자신은 더 없었다. 오랜만에 마주 하는 그 안쓰러운 눈빛이 싫었다. 지호의 유치원 버스 배웅과 마중을 나가면 괜히 수군거리는 것 같아 모자를 쓰고 나갔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이어폰을 끼고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영현은 미역국을 우리 집으로 날랐다. 프리랜서가 되어서 시간이 아주 많다며, 매일 집으로와 멍하니 있는 내게 말을 걸고 같이 밥을 먹었다. 이모가 엄마를 위해 할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을 날랐던 것처럼 영현도 그랬다. 우리는 해가 제일 쨍쨍한 시간에 창문을 활짝 열고 햇빛을 바라봤다. 밖에 나가서 걷지 않을 거면 빛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아니면 곪아버린 다는 영현의 말 때문이었다.


“언니, 있잖아.”

“응.”

“이 집 잘못 산 것 같아. 햇빛이 너무 강해.”

그런 말을 하며 우리는 거실에 의자를 두 개를 가져다 놓고 베란다를 바라보며 햇빛을 쬐었다. 처음에는 햇빛이 강렬해 울었다. 그러게, 진짜 집을 잘못 샀나 봐. 이 집 서향이었네, 하며. 영현은 그때 편집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읽은 책의 좋은 구절을 포스트잇에 써서 거실 테이블 위에 붙여놓고 가곤 했다. 꼭 위로가 되는 문장은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웃긴 문장이었고, 어느 날에는 철학적이어서 이해가 어려웠고, 어느 날에는 무척 평범한 인사말인 문장을 적어 놓았다. 나는 그렇게 영현이 남겨 놓은 문장들을 매일 읽었다. 신기하게도 무언가를 매일 읽으니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햇빛을 바라봐도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호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 앞의 천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186번 버스를 탔다. 다섯 정거장 뒤에 내리고, 60번 버스로 갈아타 열두 정거장을 더 갔다. 정신 차려보니 익숙한 동네였다. 추리닝 바람으로 1시간 넘게 걸려서 여길 왔네, 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과일 가게에서 토마토를 한 봉지 샀다. 토마토는 이모가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학생 때 여름이면 이모는 늘 토마토 주스를 해줬다. 건강에 좋다며 들이밀어서인지 영현과 나는 점점 토마토를 싫어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일부러 토마토 주스를 사 먹는 일은 절대 없었다. 이모 집에 가 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어 한번 더 눌렀다. 전화를 걸어보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이모가 잠에서 덜 깬 얼굴을 하고 나왔다.


“어쩐 일이야.”

“그냥, 그냥 왔어요.”

“비밀번호 알잖아. 까먹었어?”

“알아요.”


이모는 갱년기인지 요즘 자꾸 잠이 쏟아진다 했다. 이모, 갱년기 지났잖아요, 하니까 그런가. 그럼 그냥 날씨가 좋아서 잠이 오나 봐, 했다. 우리는 토마토를 자르지 않고 흐르는 물에 씻어 하나씩 먹었다. 그러고 이모가 거실에 펴있던 돗자리 위에 베개 하나를 더 가져다 놓았다.


“누워봐.”


나는 이모 말대로 누웠다. 잠시 누워있었을 뿐인데 꿈을 꾼 것 같았다. 엄마가 아이보리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졸업식이구나. 아빠가 내게 퐁퐁으로 비눗방울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우리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계속해서 비눗방울을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엄마가 모기 들어온다고 아빠 등짝을 때렸다.


꿈이었다. 이모가 수건으로 내 이마를 닦고 있었다.


“식은땀이 너무 나서. 아파?”


눈썹이 팔자가 돼서 묻는 이모 말에 고개를 흔들고 창문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이모는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이처럼.


“지호 데리러 가야 해요.”

“아, 임서방한테 전화했어. 지호 데리고 이리로 와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


“엄마 꿈을 꿨어요. 아빠 꿈도.”

“잘 있디?”

“예전 기억이요. 졸업식에 있던 엄마랑 아빠랑 비눗방울 만들던 뭐, 그런 꿈.”

“슬펐어?”

“아뇨. 사랑받았구나 했어요.”


도어록 누르는 소리에 이모가 일어났다. 영현의 손에 토마토가 들려있었다. 식탁 그릇에 담겨 있는 토마토를 보고는 언니가 사 가지고 왔구나? 하며 내 옆에 대자로 누웠다. 엄마가 밥 먹자고 해서 왔어. 지호도 온다길래. 나 지호 너무 보고 싶거든.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영현은 말했다. 영현 옆으로 이모가 와 누웠다. 우리는 베란다를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을 몸속으로 들여왔다 내보내는 연습을 했다. 최근 이모가 산림욕을 하러 간 곳에서 풍욕을 할 때 배웠다 했다. 열 번을 하자 이모와 영현은 잠에 들었다. 이모가 코를 골아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이모와 영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와 닮은 이모의 얼굴, 그리고 그런 이모를 닮은 영현의 얼굴. 그러니까 결국 영현은 우리 엄마와도 닮았고 나와도 닮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퇴근한 정호가 지호를 데리고 왔다. 지호의 손에 하얀 종이가 들려있었다. 지호를 보자마자 안고 뽀뽀 세례를 하던 영현이 물었다.


“이게 뭐야?”

“가족 그리기.”


지호의 대답을 듣더니 정호가 웃으며 말했다.


“지호가 제일 오래 걸렸대.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 너무 많아.”


유치원에서 가족 그리기 하면 보통 엄마, 아빠, 형제. 그리고 가끔 강아지 정도를 그리는데 지호는 가족 하면 생각나는 것을 다 그린 모양이었다. 하얀색 종이를 펼치니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건 누구야.”

“충주함미, 충주할버지”

“그럼, 이건 누구야.”

“서울함미, 서울할버지.”

“그럼, 나는 어딨어.”

“이모 여기.”

“나 얼굴이 왜 이렇게 커. 제일 크네.”


자신의 그림에 하나하나 관심 가져주는 게 기뻤는지 지호가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이건 지호.


이제 됐지? 하며 종이를 다시 돌돌 마려는 아빠의 손을 막으며 지호가 종이를 다시 펼쳤다.


“이건 초록이.”


8명의 가족 뒤로 초록색 무지개가 떠있었다. 초록색, 연두색으로 되어있는 초록색 무지개. 우리는 그런 지호를 껴안았다. 모두 함께 안았다. 나 역시 두 팔로 가득 안았다. 나의 가족. 내 하나뿐인 가족. 사랑하는 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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