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왔다 하여 산속에만 틀어 박혀 있는 건
아니다.
간간히 다른 곳도 둘러보며 나름 여가 생활을
즐기려는데
고로 제약이 많다.
"No animal "
관광지 유적지 문화재가 있는 곳은
여지없이
"No animal "
서울에선
"No animal "보다
"No kids "
존이 더 많았던 문구다.
한참 도마 위에 올랐던
"No senior"
까지
우리 사회는 Yes와 No 가
그리 분명한 사회는 아니었다.
이왕이면 좋게 좋게 얼굴 붉히지 않던 사회라
생각했는데
요즘 대놓고 상대를 정확히 겨냥한
"No"
팻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 또한 애완견을 키우기 전엔
내게 전혀 해당사항 없는 내용이라 무심코
나와 상관없는 문 제려니 했지만
막상 내 식구가 된 녀석의 가족의 입장으로
바라보니 많은 불편과 생각들을
갖게 했다.
애견은 짐승이니 그렇다 하지만
대놓고 아이와 노인을 상대로 거절이란
푯말은 거부감을 뛰어넘은 적대감을 갖는
난감한 일일테다.
요즘 같은 휴가철 가족여행길에
부모님을 모시고 간 곳에 그런 푯말이 붙어 있었다면
서로 민망한 일이 되고 말일이다.
사회적인 이슈를 갑을박론할 지식은
아니지만
세상사가 똑 부러지게 정하여 떨어지는 일들이
몇 가지나 될까?
"No"를 걸어 놓은 주체 측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상식 밖의 일들을 겪었을 수도 있다.
간혹 같은 자리서 식사를 하고 일어선
뒷모습에도 그 사람의 습관과
태도가 묻어 나오는 법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맨 앞치마 하나도
종업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습관에서 나온 삶의 태도로 얌전히 개어놓고
자리를 일어서는 말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는 깨끗한데 보이지 않는 상 밑은 너저분한
사람이 있다.
공원에 산책하는 개와 주인도
든 자리 표 안 나게 하는 이가 있다면
배변을 버젓이 널 부러트리고 가는 이도 있다.
그럼 다음 개를 동행한 이도 치우지도 못하는
민망함과 함께 저래서 민폐라는 푯말이
따라 붓고 만다.
이곳 전남 구례 순천 쪽 공원은 애완견의
내장된 칩이 있어야 공원산책도 가능하다.
산이 있는 곳에 아마 개들을 버리고 가는
무례한들이 넘쳐나서 인듯하다.
녀석을 하도 어릴 적 데려오느라
내장칩 대신 목걸이 칩만 있어서
칩을 보여주고
혹시 가방에 넣어가면 될까 싶어
급하게 유턴을 해서 가방까지 하나
구매했는데도 불구하고
"No animal "
"No"란 거절이고 기분 좋은 소리는 절대 아니지만
다음에 제시어는
"Why"
왜 거절을 당할까?
우리의 태도
부모의 태도
자신의 태도
나날이 각박하고 무섭고 인정 없는 세상
무례함을 뛰어넘어 사람이 죽고 다치는
아침 뉴스는
경악할 사회적인 문제다.
지켜야 한다고 해석하자
거절이 아닌
"No"
앞에서는 잠시 내 태도를 갖추어보자.
우리에게 당연함이란 무엇일까?
룰이란 건 자꾸 강화가 된다
지키지 않는 수위를 범했기 때문이다.
룰이 정해지면 불만도 사그라든다.
싸움도 누그러진다.
지켜야 됨을 아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말보다
보이는 "No"란
단어가
힘이 있기에 써놓은 말일 테다.
문제는 룰을 정하기 전까지 무례함 때문이다.
적어도 내 개 가
싼똥 내가 치우는 사회라면
내 양심이 살아있는 것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대놓고
"No"
란 기분 썩 좋지 않은
팻말들을 내걸지는 않았을 거다.
"No"보다는" Yes"
얼마나 "Nice"
하단말인가~
나부터
오늘 그 룰에 불만이 아닌
Why
를
내게 먼저 물어야겠다.
녀석도 차 안에서 차분히 잘 기다렸다.
선선한 날씨가 고마웠다.
남편은 다음 여행지에 애견 동반이
가능한지 한참을 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