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재 열여덟 번째 이야기

아궁이

by 진솔

첩첩산중

돌담길

꽃마당

마루

흙집

그리고 아궁이

무엇하나 현대식이라고는 외관상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내부로 들어오면 조그만 현대식

양변기가 놓인 화장실만 있을 뿐.

이곳에 와서 일주일 동안 해를 본 건

단 이틀뿐

내리 비가 왔다.

흙집에 묘미인지 전래인지는 모르나

꿉꿉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틀에 한 번은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벌겋게 장작이 타오르는 아궁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옛날 어린 기억들이 소록소록

깨어났다.

아궁이 옆에 놓였던 돼지기름

아궁이 위 가마솥에서 항상 나오던

바삭한 누룽지

다 타들어가던 장작 밑 고구마

마지막 기를 살려 장작의 화력을 더 했던 풍로

50 이상은 알아듣고

50 이하는 도대체 어느 시대 이야길꼬 하겠지만

첩첩산중 이곳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어진 옛 추억과 물건들이다.

방 안에는 흙집의 규모에 맞는 조용한 통창이 있다.

아침 햇살이 밤나무 잎사이를 뚫고 창안으로

조용히 스민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아침 일찍 눈이 떠져도 조용히 새벽을 기다린다.

창틀 위 조그만 호롱불에 불을 붙이고

창틀밑에 가지런히 놓인 주인장의 책장을

뒤적이다 보니

동안 이곳에 잠시라도

기거한 이들의 메모장이 있다.

두툼한 두 권의 방명록 같은 메모장에

스치고 지난 인연과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한 권의 시집이다.

서로의 알길 없는 인연들이 맞닿았던 곳이 만든

예술품이다.



또 어떤 이는 잠시의 인연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조용히 산을 내려가면

주인장이 조용히 액자를 만들어 저리 놓는다.


어느 이름 없는 화백의 초가집에 빛을 넣은

혼이 이곳에 남았다.

파스텔로 손으로 쓱쓱 문질러

집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처마밑 호롱불에 비추어진 벽을

어둠 속에 비추어지는 작가의 시선으로

잘 표현된 멋진 한 점의 그림이다.

더욱 그 그림이 매력적인 건

본인이 가지고 다니던 수첩 한 장에

담아내어 두고 간 작품을

주인이 저리 액자에 담아둔 사실이다.

주인장과 객들이 만든 아트홀

한 달을 기거하는 나는

조용히 하루하루 어른이의 그림일기를

쓰고 있다.

하루하루 웃음에 한 줄을 남긴다.

어제 따땃하게 달구어진 아궁이 덕에

비 오는 오늘 아침은 개운하다.

처마 끝에 대롱 대롱 아궁이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또 하나 추억을 매달아 놓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