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과 행운의 냉장고

by 진솔

살다 보면 어려울 때가 참 많았습니다.

또 그렇게 벌려고 해도 모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젊은 날 돈 같습니다.

살다 보니 모든 일에는 때라는 게 있는듯하고

그때가 되어야 일도 돈도 순탄해지는 듯합니다.


참이상한 건

어렵고 돈이 궁할 때면

마치 드라마처럼

일은 꼬이고 떨어지는 물건은 많고

고장 나는 물건에 누가 아프기까지

마치 누군가가 궁지로 몰아넣지 않고서야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을까며

믿기지 않는 일들에 힘겹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알뜰보다는 억척을 떨게 되고

집안의 물건은 숨만 쉬고 쓸 수만 있으면

고쳐 쓰고 붙여 쓰고

물건도 사람도 제 수명이 끝나야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니

멀쩡한 살림살이가 몇 개나 되었을까요?

그런데

살다 보니

뜻하지 않게

도와주는 귀인도 만나게 되는 걸 보니

억척이 된 열심히 행운을 만들기도 하나 봅니다.

그 시작이

22년 전 이 녀석과 시작이었습니다.


막 시작한 서울살이

몇 개 되지도 않던 세간살이

월세보다 아들 유치윈비가 더 비싸던 서울살이

그 월세 무서워 이모집에 얹혀살던 셋방살이

갖은 고생 온몸으로 부딪치던 세상살이가


이모 한 사람의 배려로

슬슬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어려울 때 누군가 한 사람의 도움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크나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월세 걱정 안 하고

아들 유치원을 마쳤고

그때 막 출시되어 몇 개월 사용하시던

냉장고까지 주셨는데


이모의 배려는 물론 이었지만

그 냉장고 덕분인지

그때부터 모든 일이 실타래 풀리듯 하면서

돈도 벌고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하며

내 집을 살 때까지

그러기를 22년 잔고장 나서 푼돈 들이지

않게 했던 내겐 참으로 복덩이고

행운의 냉장고 라며 살았습니다.


오늘 22년을 우리와 함께 한 행운의 냉장고를

보내며 닦고 닦으며

고맙다

애썼다

덕분이었다

녀석의 양문을 열고서 말해주었습니다.


사람도 물건도 내게 귀인이며

행운이었다고

깊이 감사했습니다.


새로 들어올 번쩍번쩍한 녀석에게도

귀 같은 문에 대고

오랜 시간 같이 잘 살아보자며 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