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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ug 23. 2023

사람

습관처럼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올라온 글들을 읽고

유튜브를 뒤적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썸네일 하나

"인어할머니"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느리고 구부정한  노인이 바다로 발걸음을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91살의 최고령인 그분이  해녀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보기 시작해

총 5부작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다 시청하고서야

컴퓨터를  켤 수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이라고  써 놓았다.

깜빡 이는 커셔는 어서 무어라도 써보라며

요란을 떨지만

"사람"이란 글자 앞에 아른거리는

두 마음이 번잡해진다.

좋기도 나쁘기도 한 사람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큰 나무 하나와 작은 나무하나가 기대서있는

"사람人"

본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기대서면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인어할머니와 선장"

사람 냄새나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 였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면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펼쳐  들꽃 한 점을

그려 넣는 느낌이 들듯

가슴이 아련해진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는 인간극장이 오래도록  장수하고

있는 듯했다.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들꽃 같은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라고 울고 웃는 세상사

사람 사는 게 뭐 별거 있냐고

저리 기대고 살면 힘든 세상도

좀 견딜만하다고 말이다.


91살의  울릉도 해녀 할머니와

65살의 늙은 선장이 기대어 살아가는 인연


남편과 두 아들을 집어삼킨

무덤 같은 바다를  터전으로

나고 자라고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낸 삶과

혼자 여기저기 떠돌며 정착할 수 없던 삶을

인연으로 묶어  기대어 살아가 삶의 이야기.


연세 많은 해녀

아니 어쩜 죽음을  목전에 달고 다니는

해녀를 받아주지 않던 배들을 대신해

객지에서 오징어 잡이나 하자며 들어온

선장과의 만남은 분명 인연듯  하였다.

혼자서 뻣뻣한 잠수복 하나도 입을 수 없다.

선장이 도와주지 않으면

물질도 나갈 수 없다.

물질해 온 무거운 망태기도 들어 올릴 수 없다.

하지만 물속에 뛰어들 때면

누가 91세라 할까  

사뿐히  배에서 몸을 띄워 바다에 뛰어들  때면

말이다.

그뿐인가

바닷속에서는 자유롭기까지 하며 유형하다.

물속을 꿰뚫고 있는 듯 어느 바위틈에

무엇이 나고 자라는지를 척척 물속을 횡단하며

 손끝에는 힘이 실리고

 테왁 속엔 미역이며  홍합이

풍년이 되어 실린다.

선장은 늙고  여윈 몸이 안쓰러워

돌아가길 서둘러도 할머니의 바다에서의

고집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오직 테왁하나를 보고 오르고 내리기를

수십 번 그리고 수백 번

그때마다 뱉어내는 "숨비소리"는

할머니의 연세만큼  힘듦이 고단함이

그대로 숨소리로 전해져

더욱 격하고 요란해진다.


외마디 "휴~하고 날숨을 내뱉어야

다음 숨을  들이켤 수 있다.

 안쓰럽고 불안하기까지 하지만

물속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인어할머니다.

꽉 채운 테왁을 건네고서야

겨우 배위로  올라설 수 있다.


숨을 들이켜어고 선장이 내어주는 따뜻한

커피 한잔에 굳은 손과 지친 몸을  잠시 달랜다.

17살에 시작한 물질이 91살까지 이어진 삶이다.

젊은 아들들을 앞세워 사는 삶 같아

어디 날숨 한번 크게 쉬셨을까?

그래서 물질을 핑계 삼아

자꾸만 자꾸만 바다로 향하고 계신 건 아니었을까?


가끔  죽은 아들들의 사진을 보며

노래 같은 긴 한숨을 내뱉곤 하신다.

여전히 젊고 건장한 청년으로  남아 있는

 보고프고 그리운 사람들

보고 싶은 만큼 그리운 만큼

그 한 은 노래가 되어 울렸다.


아들들을 잃은 할머니와

어느 곳에서도  살붙이를 찾지 못한 떠돌던 삶이

기대고 사는 사람이야기.

몸과 마음이 떠돌던 사람들을 묶은 인연이란 끈

"사람"

10년의 세월에  무슨 말이 필요도 없고

척하면 척이 된 단짝이기도 하고

말없이 엄마가 되기도 아들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 없는 빈자리

살붙이 없던 빈자리를

서로 기대며 메꿔온 세월이고

사력을 다해온 터전이다.


누구에게는 더없이  푸르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할머니에겐  남편의 무덤이고

자식의 무덤이니  어찌  그  푸르름이  풍경이 될 수 있을까?


둘이 기대어 온 10 년의 세월보다

앞으로 기댈 수 있는 시간이  짧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제처럼 오늘도  

서로를 기대어 사는

큰 나무 작은 나무 아름다운 "사람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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