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부티가 나는 중년이었다. 부티란 걸 어떻게 느꼈을까. 긴 머리를 어깨 한쪽으로 늘어뜨리고 있었고 스웨트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남동의 브런치 카페였다. 렌틸과 후무스와 연어를 팔고 테이블은 나무 팔레트로 만들어진 그런 곳이었다. 온라인 리뷰를 보니 남자 직원이 무례하고 커피는 1인 1 주문으로 쳐주지 않는다는 불평이 많았다. 음식은 건강한 맛이 난다고 했다.
여자는 '아줌마'라는 사람과 자기 아이와의 전화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앞에 앉은 일행에게 아줌마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불평을 했다. 아이한테 무슨 영어 교재를 챙겨주라고 시키는 상황인 것 같았다. "거기 separate advanced worksheet 있잖아요." 유창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이었다. 그러나 아줌마가 이해하지 못하자 아이를 바꿔 직접 얘기해야 했다.
내 남자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 영어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 일이었고 그 전은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상이었다. 한 학원에선 정부 감사가 나오자 원어민 선생님들이 모두 책장으로 가려진 방에 숨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적이 있었다. 어떤 곳에선 원장이 예고 없이 해고된 적이 있었는데 한참 후에 이유를 알고 보니 수업비 일부를 현금으로 받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원장은 강남에 아주 비슷한 영어 유치원을 차렸고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속속 빼내 왔다. 영어 유치원의 세계는 이야기보따리였다.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이건 책으로 쓰여야 한다고 몇 번 제안했었다.
그리고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을 보기 시작했다. 내용이 뭔지도 알기 전에 배우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틀었다. 이요원, 김규리, 추자현이라는 배우들의 앙상블은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나는 '언니'들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10대 때 보았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요원, 배두나, 옥지영이라는 언니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정신없이 매료된 작품이었다. JTBC의 '청춘시대'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게 재밌었고, tvN의 '디어 마이 프렌즈'는 어마어마한 대배우들의 연기력에 웃으며 울며 한 회 한 회가 아까울 정도로 즐겼다. 특히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상한 연기와 대사 전달에 혼미하던 요즘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작품이었다.
내가 여배우들이 나오는 작품들, 일상의 갈등을 다루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티브이와 극장가를 점령하는 남자들의 고만고만한 이야기가 싫은 까닭도 있었다. 후줄근한 형사와 잔인무도한 양복이 벌이는 액션 영화는 제목만 달리해서 수도 없이 많이 변주돼왔다. 그런 것들을 가리켜 '남탕' 영화라는 용어가 있다는 걸 배웠을 땐 적잖이 통쾌했다. 비판하고 싫증을 느끼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 아니었구나.
조금 다른 장르지만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가 크게 인기를 끌고 거기에 나왔던 언니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 남탕 예능계에도 큰 변화가 오는 것 같다. 스우파를 보며 내가 느꼈던 소름 역시 전 국민이 함께 느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정신적 소름이 끼쳤다.
'그린 마더스 클럽' 두 화를 봤다. 등장인물과 설정은 진부한 쪽에 가까웠다. 주인공 이요원은 마냥 여주인공이었다. 모든 게 '하늘하늘'이었다. 머리도 하늘하늘, 몸도 하늘하늘, 말투도 하늘하늘 이었다. 누가 말을 걸면 항상 '으흥' 하는 콧소리부터 내고 대답했다. 교수님이냐고 야단을 떠는 어머니들 앞에서도 '으흥', 반갑다고 난리 치는 김규리 앞에서도 '으흥' 뿐이었다. '청춘시대' 박혜수 캐릭터가 꼭 그랬다. 말끝을 흐리고 어색한 미소밖엔 지을 줄 모르는 아이. 그런 아이가 점점 당찬 여자로 변한다는 게 박혜수의 플롯이었다. 그게 스토리텔링의 정석이었다.
바스러질 것만 같은 이요원도 고난과 역경을 거친 뒤 강한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전과 후의 대조를 뚜렷하게 만들려고 처음엔 속 터지는 여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야 쾌감이 더 크게 오는 법이니까. 거기에 이르기까지 견디기가 힘든 게 문제였다. 이요원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쳐도 폴짝폴짝 거리는 친구를 앞에 두고 으흥 외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건 대체 무슨 동정과 연민을 느끼라는 건지 모르겠다. 답답하기도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이요원 옆에 주민경이 차라리 좋을 정도였다. 이요원의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이요원의 으흥을 더 이상 참기 힘들 때 주민경의 연기를 보며 살아남았다.
추자현의 캐릭터도 어디서 많이 봤다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인물들은 결국은 다 그렇다. 그걸 살리는 게 배우의 역할이었고 추자현은 궁극의 경지였다. 추자현은 한 때 폭풍 같은 컴백으로 '추자현의 재발견'과 같은 기사를 무수히 만들어낸 배우였다. 영화 '미인도'에서 추자현의 연기에 감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십니다. 아니, 사랑을 모르시나?"라는 별 거 없어 보이는 대사에 사뭇 매료되어 친구와 몇 번이고 되읊었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아직 이요원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처음의 하늘하늘 여인을 견뎠으니 이젠 좀 더 응원하고 싶은 사람을 보여줄 것이다. 초등학교 어머니들의 세계라는 설정도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겐 그 어떤 남탕 액션보다 치열하고 흥미진진하다. 남자 친구는 영어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될 때, 공개 수업 장면이 나올 때 큰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아주 현실적이라고 했다. 그게 불편한 모양이었다. 너무 진짜에 가까울 때 느껴지는 공포랄까, 거리를 두고 감상하기가 어려웠나 보다. 그리고 김규리 부부가 쓰는 불어에 자꾸 웃음을 터뜨렸다. 상위 중 상위의 상징으로 쓰는 외국어였는데 불어 할 줄 아는 사람 귀엔 영 서툴렀나 보다.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어 모르는 사람이 한국어 쓸 때 실소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