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 얘기하고 있잖아요. 보세요. 좀."
아빠육아일기
아들내미 말이 많이 늘었다.
하는 말 듣고 있으면 웃기기까지 하다.
말속에 자기 의도와 미묘한 의미까지 다 들어있다.
머리가 많이 굵어졌다.
일 마치고 차로 딸 미술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뜬금없이 아들이 내게 그런다.
"아빠, 저 일하러 가고 싶어요."
"응.. 왜?"
"엄마 아빠도 일하러 가잖아요."
"아! 맞네. 근데 무슨 일 하고 싶어?"
"장난감이랑 놀고 싶어요."
"하하하하하"
"일하러 가는 건데, 노는 건 아닌데"
"전 놀 거예요."
'전 놀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아하! 했다.
그래 맞다. 놀러 가는 직장 참 좋겠다.
아들은 그런 직장에서 일하면 참 좋겠다.
-아빠 생각-
미술학원에 거의 다다를 무렵 이젠 딸이 그런다.
"아빠, 전 돈 많이 벌거예요."
"딸, 돈 많이 벌어서 뭐 할 건데?"
"전 전기차 살 거예요. 배터리가 저절로 채워지는 그런 차를 만들 거예요."
"그래 정말 멋지겠다."
딸이 멋지게 대답을 하면 우리 아들 질 수 없다.
누나 따라쟁이 아들이다.
"아빠, 나도 갔다가 멈추고, 멈추고 다시 가는 그런 차 만들 거예요."
"그래 멋지네."
사실, 차는 원래 갔다가 멈추고 멈추고 다시 가는 건데라고 말할 뻔했다.
지금 생각하니 요즘 유행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의도로 말한 것 같다.
아들 말이 많이 늘었다.
생각이 깊어졌다.
생각이 깊어진 만큼 대화 기술도 많이 늘었다. 집에서 자기 놀고 있는데 말 안 들어주면 큰일 난다.
"아빠 제 얘기하고 있잖아요. 보세요. 좀."
"아빠 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
레고 블록으로 멋진 비행기를 만들었다.
가서 만든 거 봐줘야 하고 말도 해 줘야 한다.
"멋지네. 아들. 이건 뭐 하는 거야?"
"그건 미사일이에요. 발사하는 거예요."
"아~아빠도 만들어 볼까?"
"아니에요. 이건 제가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놀아줄 때는 꼼짝 마라다.
아무것도 못한다.
자기 쳐다보지 않고 잠시라도 딴 거 하고 있으면 '아빠'그런다.
아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대화 스킬이 심리학 책 안 부럽다.
딸 학원에 보내주고 아들이랑 40분 정도 데이트를 한다.
"아들, 아빤 아들이랑 둘이 같이 있는 게 좋은데 아들은 좋아?"
"네 당연히 좋죠."
사실, 딸 아들 3주 전에 동시에 미술학원에 등록을 하고 같이 다녔다.
한날은 미술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다.
"동생이 잘 못하니까 누나가 계속 도와주느라 그림을 제대로 못 그리네요. 시간대를 다르게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애들과 이야기 나누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혼자서 미술 학원 다닐 수 있겠어?"
"아빠 무서워요."
"그럼, 아들 아빠랑 같이 있을래?"
"네. 아빠."
그래서 누나가 미술 간 한 시간.
이 시간은 오롯이 아들과 둘이서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누나랑 항상 같이 있다 혼자 있으니 처음에는 엄청 자유로워했다.
그러나 놀이터에서도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내 눈치만 봤다.
그렇게 장난꾸러기 녀석이 완전히 길 잃은 순한 양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은 역시 혼자 있을 때랑 누군가랑 함께 있을 때 다르구나!
아들을 통해 또 배운다.
아! 아들. 누나랑 함께 있는 모습. 혼자 있을 때 모습.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우리 반 학부모님들도 교실에서의 또 다른 자녀 모습도 봤으면 좋겠다.
-선생님 생각-
시간이 며칠 흘렀다.
누나와 떨어져 혼자 어쩔 줄 모르던 아들.
이제는 당당하게 아빠랑 같이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단다.
사실, 아들 딸 둘 같이 학원에 갔을 때 그 자유시간 50분이 난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표현을 못할 정도다.
육아하시는 분들은 다 알 거다.
하하하하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생각도 못해본 나의 자유 시간이 덜렁 주어졌다.
그 어느 날에 1시간이라는 크기로.
그 첫날에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게 뭐지 하는 느낌으로.
'그래도 할 건 하고 쉬자!'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밥하고 반찬 만들고 좀 정리를 하니 30분이 날아갔다.
'20분아 제발 가지 마라! 제발!'
그렇게 생각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갔다.
겨우 겨우 소파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좀비처럼 아들 딸을 데려오던 시간이 불현듯 생각난다.
이제는 그런 꿀 같은 시간도 사라졌다.
아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 희한하다.
아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이 시간이 나의 자유시간보다 100배만큼 아니 우리 딸 표현을 빌리자면 우주 크기보다 더 좋다는 거다.
신통 방기 하다.
둘에 신경 썼던 모든 에너지를
오롯이 하나에 가져가니
대화가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지고
모든 게 편해졌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아들이랑 진짜 온전히 대화하는 이 느낌
너무 좋다. 소중하다. 행복하다.
-아빠 생각-
누나 데려 가는 길.
아들과 손잡고 아파트 숲 속을 거닌다.
초록잎을 보고 "그림"
빨간 홍가시나무를 보고 "레~"
연한 노란색 잎을 보고 "엘로~"
혼자 연신 영어로 말하는 우리 아들.
영어단어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투명색 가로등 위 부분을 보고는
"아빠, 이거는 영어로 뭐예요?"
"transparent"
"트랜스포메이션이랑 비슷하네."
"트랜스포메이션은 뭐야?"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물어본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거잖아요."
"아 맞네."
"이 안에 공기방울은 뭐예요?"
"bubble"
아들 녀석 궁금한 게 참 많다.
지나가다 숲 속에 있는 빨간 소화전이 뭐냐고 묻는다.
"그런 불이 났을 때 거기서 물이 나와서 불을 꺼 주는 거야."
"풀이랑 꽃이 안 타게 도와주는 거네."
"그렇지."
그렇게 아들과 행복한 대화시간을 보내고 딸을 데리러 간다.
누나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꼭 우리 반 애들 보는 것 같다.
"복도에 뛰지 말고"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나왔다.
그렇게 누나랑 재회를 한다.
딸도 동생이 많이 보고 싶었는지 동생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빠 이건 제가 밀게요."
자전거를 이제는 누나가 밀어준다.
다 컸다.
나의 시간은 없어졌지만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이 생겼다.
매주 화목 그렇게 아들과 데이트를 한다.
의도치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