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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연의 집' 카페

by 도도쌤

2주 전 올레 5코스를 혼자 걸의 때의 일이다. 올레길을 순간 놓치는 바람에 올레길을 찾느라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우연히 전봇대에 '서연의 집'이라는 카페 상호를 보았는데 대수롭지 않게 '뭐! 카페 소개하는가 보네! 난 커피도 안 먹으니 나랑은 별 볼 일 없겠네'하며 골목에서 나와 '서연의 집' 카페 반대 반향으로 올레길을 걸었었다.


https://brunch.co.kr/@jjteacher/157

그런데, 며칠 후 우연히 JJ teacher 작가의 <제주도가 그리우면 카페 '서연의 집'에 간다>라는 제목을 보게 되었다. '앗! 뭐야! 서연의 집이라는 데가 유명한 데었나?'싶었다. 내용은 다 안 읽고 초반 몇 줄을 읽었는데 영화 <건축학 개론>에 나왔던 한가인이 집수리하던 집이라고 했다.


순간 번쩍 했다. '아니, 이 유명한 곳을 그냥 지나쳤네! 집에서도 가까운데!' 하며 아내에게 조만간 한번 그곳에 가보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도 <건축학개론>을 본 지가 10년은 된 것 같은데 내용이 가물가물 했다. 극 중 배수지가 건물 위에서 이제훈 귀에 이어폰을 끼어주며 나오던 김동율의 '기억의 습작' 노래에 온 몸이 전율했던 짜릿한 경험밖에 안 남아있었다.


이젠 버틸 순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그래! 서연의 집 카페 가기 전에 반드시 <건축학개론> 영화 보고 가자!'라고 마음을 먹고 아이들 잘 때를 이용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훈과 배수지의 대학시절 알콩달콩한 모습을 다시 보고 있자니 '아! 나도 저땐 저런 순수한 감성이 있었는데...' 하며 '잘돼라 잘돼라!' 속으로 열심히 응원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현실의 한가인과 엄태웅을 보았다. 그 당시 결혼 전이라 전혀 이해가 안 갔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쏙쏙 이해가 되었다. 첫사랑 아닌 다른 누군가와 결혼해야 하는 엄태웅과 이혼의 아픔을 경험하고 첫사랑 엄태웅을 찾아와 집을 지어달라고 하는 한가인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잘 되기를 바랐지만 오해 아닌 오해로 아쉽게 헤어지는 이제훈과 배수지. 첫눈 오는 날 다시 만났다면 좋은 인연으로 이어졌겠지만 결국은 배수지는 빈집에서 기다리다 시디플레이어와 전람회 시디를 놓고 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엄태웅은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떠나고 엄태웅이 설계한 제주도 집에서 한가인은 택배를 하나 받게 된다. 그 안에 있는 시디플레이어와 전람회 시디를 보며 한가인이 씩 웃으며 '기억의 습작' 노래가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결국, 이제훈이 빈 집에 와서 시디플레이어와 전람회 시디를 챙긴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의 아쉬움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상징물이 아닌가 싶었다.




<건축학 개론> 영화를 보고 나니 올레길을 걸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서연의 집'이 너무 가고 싶었다. 한가인의 어릴 적 신발 자국도 보고 싶고 통창에 가서 파도소리도 듣고 싶고 이층에 올라가서 엄태웅과 한가인이 누웠던 잔디밭에도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평일 낮에 방문한 '서연의 집'. 근데 뭔가 영화 속 주택과 낯설다. 빨간색 지붕 2층을 기대했는데 새로 카페로 만들기 위해 2층과 1층을 리모델링을 해 영화 속 느낌이 안 나 조금 아쉬웠다.



입구부터 들어서자마자 수돗가 신발 자국을 확인하며 '아! 있네'하며 뿌듯해하는 나다. 그리고 백구 한 마리가 나를 반기는데 너무 반갑다. 내 손을 핥으며 아주 친근하게 내 옆에 다가와 앉는다. '아! 진돗개 진짜 키우고 싶다!'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입구에 들어서자 엄태웅이 서 있던 통유리 창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벌써 먼저 온 손님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분주하다. 아내와 나 책 읽기 좋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내 먼저 그리고 나 이렇게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을 한다.


2층에도 올라갔는데 공간이 좁아 좀 답답한 느낌이 났다. 그리고 밖에 나가 맨발로 잔디를 걸어보고 싶었는데 가지 말라고 펜스가 쳐져 있어 조금 아쉬웠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는데 아이 둘이 열린 통유리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영화 속 배경처럼 느껴졌다. 손님들이 열린 통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차를 마시고 조각 케이크를 먹었는데 맛있다. 이게 얼마만의 여유로움과 사치인가 싶다. 조금 후에 사진을 찍었는데 배경은 정말 멋진데 내가 그 배경 속으로 들어가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나 때문에 사진이 망친 느낌이다. 하하하하하.


서연의 집 카페, 통유리 개방 한 상태에서 순간을 남기다. by도도쌤

열린 통창 바로 앞에 앉아 이 순간을 담기 위해 영상으로 남긴다. JJ teacehr 작가님에게 낮의 '서연의 집' 카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기도 하다. 여기 카페에 앉아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니 더 공감이 갔다. 50번 넘게 본 <건축학개론>, 엄태웅과 한가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결실로 남은 '서연의 집', 이곳에 오면 영화가 저절로 생각나고 대학교 시절 이제훈과 배수지의 첫사랑에 우리 모두의 첫사랑을 떠올려 볼 수 있게 하는 건 아니었을까? 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아내와 나 책이 더 이상 눈에 안 들어온다.


"아! 허리야!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 아프네!"

"맞제?"

"카페 내 스타일 아니야!"

"우린 역시 올레길 걸으면서 자연도 보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어울린다. 맞제?'

"어! 내일부턴 이제 올레길 조금씩 매일매일 걷자!"

"그래"


그렇다. 아내와 나 정말 모처럼 둘이서 카페에 와서 책을 읽고 느긋하게 보냈는데 역시나 우린 카페 스타일은 아니다. 걸으면서 자연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스타일이다. 그거 발견한 것만으로도 수확이 크다.


아무튼 오늘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바로 온 '서연의 집' 카페. 정말이지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 통유리 창의 내 모습은 아직도 무지무지 어색하지만 말이다. 하하하하.

JJ teacher 작가님 멋진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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