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와서 아침에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날씨' 확인이다. 최고 온도는 19도까지 올라가고, 구름 한 점 없이 상쾌한 '쾌청'한 날이라고 한다. 아내 보고 "오늘 날씨 좋다는데 가파도 갈래? 올레 21코스 갈래?"라고 물으니, "가파도 가서 자전거 타고 싶어."라고 말한다. 평일이라 저번에 마라도 갈 때처럼 티켓은 현장 예매로 여유 있게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4월 8일 금요일 평일 아침 9시 55분. 가파도에 가기 위해 '가파도 마라도 정기여객선(운진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느낌이 안 좋다. 이미 차가 주차장에 빼곡하다. 서둘러 티켓 예매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이... 제주도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본다. 너무 많은 사람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승선신고서 작성하는 사람, 신분증 챙기러 다니는 사람, 이리 뛰어가고 저리 뛰어간다. 한쪽에선 전화하느라 바쁘고 화장실엔 또 줄이 줄이..... 이건 뭐 비상시국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가파도가 이렇게 인기 여행지였나?'
평일이라 한산하게 가겠네하는 생각이 그 많은 사람을 보는 순간 처참히 무너졌다. 아니 티켓을 꼭 사고 말 거란 승부가 불타올랐다.
"일행분은 여기 계시지 마시고, 신분증이랑 승선신고서 챙겨 한 사람만 기다리세요."
안내하는 사람이 긴 줄을 최대한 줄이려고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한다.
아내도 기가 찼는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며 얼른 신고서를 작성하고 내 신분증을 챙겨 줄을 선다. 오늘 가파도 갈 수 있겠나 싶다. 자세히 보니 예약 줄이 따로 있다. 4월에 가파도 가고 싶은 분이라면 배편 예약은 진짜 필수다 필수.
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아내 드디어 표를 받아 왔다.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가파도 출발 시각은 11시 20분. 또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고맙고 고맙다.
제주도민이라 할인을 받았다. by도도쌤
"상상 이상이다. 이렇게 표를 사야 하나?"
"내 말이.. 이렇게 기다려서 굳이 가야 하나?"
그런데 또 놀란다. 승선장 줄도 어마 무시하다. "내가 다시는 가파도 오나 봐라 하하하"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온다. 배 타려고 줄 서 있는데 앞에 있는 아저씨 한 분이 유머라고 하시는데 나랑 코드가 비슷해서 속으로 웃었다.
"왜 가파도고 마라돈지 알아? 돈 꿨는데 '가파도' 되고 '마라도' 돼서 그렇대."
배에 올랐다. 전망을 볼 수 있게 2층 배 가쪽에 그냥 앉아버렸다. 배가 움직이니 하얀 물보라가 새파란 바다 위에 물감을 칠하며 달린다. 저 멀리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이 이곳까지 전해진다. 경치 좀 감상하려니 10분 만에 도착이다. 빨리 도착해서 한 번 놀라고, 다시 제주로 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보고 또 놀란다. 오늘 여러 번 놀란다. 하하하하.
아내와 나 가파도 와서 제일 하고 싶었단 자전거를 빌리는 곳으로 냅다 달려간다. 빌리는데 자전거 한 대당 5,000원이다. 생각보다 싸서 놀랐다. 아내 자전거가 진짜 타고 싶었던 모양이다. 10대 소녀가 되어 까르르까르르 넘어간다.
"우와! 너무 신난다! 너무 좋다! 하하하!"
평지에다 차가 없는 거리에다 바다가 보이는 이 아름다운 길을 자전거로 가니 걸을 때의 여유와는 다른 색다른 빠른 맛이다. 아내 바람을 맞으며 이 멋진 풍경에 취해 계속 좋다고 그러는데 내까지 기분이 좋다. 표 끊기 위해 배 타기 위해 그렇게 기다린 시간은 기억에도 없는 모양이다. 하하하하.
바다에서 휘파람 소리가 '휘익' 하고 들리는데 해녀분들이 숨 참았다가 내 쉬는'숨비 소리'다. 희한하고 신기했다. '소망 전망대'로 가라는 올레길 표시가 있어 자전거를 정차하고 올라갔는데 경치에 또 놀란다. 초록초록 청보리밭과 풍력발전기 2대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게다가 조금 더 걸으니 '소망 전망대'가 나오는데 입이 떡 벌어진다. 샛노란색, 초록색, 바다색, 흙갈색의 자연이 만들어낸 환상의 그림에 '아! 여기 보러 가파도 오구나!'싶다. 그 그림 속에 들어간 사람들 다들 하나같이 열심히 꽃에서 꿀을 만드는 벌처럼 행복하게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자전거로 두 바퀴나 가파도를 돌았는데 우리 아내 오늘 필 받았는지 한 바퀴 더 돌겠단다.
"난 한 바퀴 더 탈게. 여보는 쉬어요~~ "
그러면서 아내 '라라라라라~'하며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휑 가버린다. 해물짬뽕에 전복물회를 먹고 더 힘이 낫나 보다.
엉덩이가 너무 아픈 나, 쉼터 정자에서 코 고는 사람 옆에서 낮잠을 잤는데 그게 또 꿀맛이다. 태양은 한없이 뜨거운데 여기 정자 아래는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춥기까지 하다. 자다 잠시 눈을 떠서 바다를 바라봤는데 순간 여기가 천국인 줄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었다.
가파도 티켓 예매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고, 자전거의 매력에 또 놀라고, 자연이 그리는 가파도의 노란 파란 초록빛에 하루 종일 놀랐던 하루였다. 안 먹었더라면 아쉬울 뻔했던 청보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가파도가 주는 달콤함에 살짝 웃어본다.
배가 하얀 물살을 일으킨다. 대한민국 국기가 팔락팔락거린다. 그 뒤로 가파도가 점점 멀어진다. 티켓 끊고 지쳐 내가 했던 말 "이렇게 기다려서 굳이 가야 하나?"란 질문에 감히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