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에게 (편지글)

by 도도쌤

가파도에서 바라본 너는 한 폭의 그림이었어. 군산오름에 올라 바라본 너 역시 끝내줬어. 제주 남쪽 웬만한 높은 곳 어디를 가도 보이는 너.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제법 그 매력이 떨어질 법한데도 다시 올레길 10코스에서 가까이 너를 만나니 또 신비롭게 느껴지구나.


20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에서 안덕으로 가는 길, 버스 창문 너머로 네가 바로 내 눈앞에 두둥 나타났지 뭐야. 너의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에 감탄해 고개가 절로 올려봐 지는데 이렇게 초근접으로 너를 구경할 수 있다는 자체가 광이구나.

초록풀과 산방산 by도도쌤


거꾸로 걷는 올레길 10코스, 비가 막 그쳐서 그런지 공기도 깨끗하고,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뜨거운 해도 없어 걷기엔 안성맞춤이지 뭐야. 아기자기한 하모해변길을 끝으로 도로를 건너자, 넓은 들판 끝에 산방산 네가 우뚝 보이는데 얼마나 또 반가운지 몰랐어.


유채꽃과 산방산 by도도쌤


늦게 핀 노란 유채꽃과 네가 참 잘 어울렸어. 주위를 둘러봐도 높은 건물은 하나도 없고 초록 밭에 하늘과 구름과 너만 있는 이곳. 360도 사방이 확 트인 풍경 속으로 너를 만나러 가는 자체가 너무 감격스웠어.


올레길 리본과 보리와 메밀꽃과 함게한 산방산 by도도쌤


올레길 리본과 함께 너를 찍고, 노랑 하양 감자꽃과 함께 찍고, 황금보리와 함께, 걷고 있는 아내랑,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만나본 메밀꽃과 함께 너를 찍었어. 사진들이 온통 산방산 너와 함께한 사진밖에 없네. 우리 아내가 질투를 할 만큼 너 사진이 아내 사진보다 훨씬 많구나.


관제탑과 산방산 by도도쌤


일본이 만든 알뜨르 비행장 지하 벙커 속을 나와 산방산 너를 다시 보는데 내 마음이 다시 울컥했어. 이 아름다운 곳에 지하벙커와 수십 개의 비행기 격납고는 웬 말이냐? 그리고 관제탑이라고 하는 시멘트 사각기둥과 네가 겹쳐 있는 풍경을 보니 역사의 아픈 현장 속으로 간 빨려 들어간 듯했어.


초록 보리 물결 by도도쌤
구름 모자 쓴 산방산 by도도쌤

바람에 날려 하늘하늘 거리는 초록 보리는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지 몰라. 그 보리 위로 마음껏 신나게 날아다니는 제비들이 정말로 자유로워 보였어. 보리를 보느라 순간 너를 못 봤는데 너를 다시 보니 하얀 구름 모자를 쓰고 장난치고 있더라. 그 모습도 찍어 봤지.


섯알오름 학살터 by도도쌤


섯알오름 학살터를 지나치는데 그냥 계속 마음이 무거웠어. 그놈의 사상과 전쟁이 뭔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 너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정확히 기억하고 있겠지.


형제섬과 산방산 by도도쌤
사계해안과 산방산 by도도쌤


여기 끝 길에서 너를 형제섬과 같이 나란히 마주 보는데 역시나 넌 바다와 함께할 때가 제일 멋지구나, 하고 생각해. 버스 시간이 40분 이상 남아 또다시 너를 해안길을 따라 계속 바라보며 걸었어. 그렇게 보고 또 보고 걸어도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너구나.


마늘과 보리와 사계중앙로와 함께한 산방산 by도도쌤


사계 마을 길 한가운데서 너를 보는데 보리와 마늘과도 제법 잘 어울리더구나! 뽑아 놓은 마늘 때문에 마늘향이 바람을 타고 내 코를 얼마나 기분 좋게 했는지 몰라. 집으로 가는 사계 중앙로에서도 202번 버스와 cu와 함께 너를 다시 만나는구나!



종일 너를 본 기억밖에 안 난 올레길 10코스였어!

봐도 봐도 좋은 너, 산방산.

다음에는 꼭 너를 더 가까이 오르고 말테야!

언제까지 그렇게 멋지게 웅장하게 신비스럽게 제주를 빛내 주려 구나!

오늘 걸은 올레길 10코스 by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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