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시간이 여의치 않다. 주말에 가고는 싶은데 항공편 예약이 너무 어렵다. 예약을 했어도 여행에 쓰이는 경비도 만만치 않다. 항공비, 숙박비, 식비, 렌트비, 입장비... 줄줄이 돈이 센다. 시간과 돈이라는 제약 때문에 제주에 한 번 오기가 참 힘들다.
제주에 와서도 유명하다던 곳 위주로 여행을 가게 된다. 오름은 새별오름이 유명하니 가 봐야겠다. 바다색은 협재, 함덕이 끝내주니 그쪽으로 가야겠다. 성산일출봉은 세계문화유산이니 가 봐야겠다. 서귀포엔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새연교가 유명하니 새연교를 한 번 걸어봐야겠다. 이런 식으로 일정을 짜게 된다.
그런데 내가 '원물 오름'을 보기 위해 제주에 가 봐야 한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원물 오름이 도대체 어디야?'
'거기가 제주에 있긴 있는 거야?'
'유명한 곳도 아닌데 거길 왜 가?'
하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일 거다.
안 가봤으니, 안 유명하니, 지레짐작하여 가 볼 필요가 없는 거다. 제주에 겨우 시간 내서 돈까지 많이 쓰는데 이름 없는 곳엔 가기가 꺼려진다. 내 같아도 모처럼 오는 제주 여행에, 검증된 곳에 가도 일정이 빠듯한데 검증되지 않은 곳에 가 보라니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
하지만 딱 1시간 여기를 오르내렸는데 기존의 나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졌다.
'바로 이곳이지, 이곳이 바로 제주지. 이런 곳에 사람들이 와서 제주의 진짜 모습을 봐야 하는데. 참 아쉽다. 정말 아쉽다.'
이 생각밖에 안 났다.
'이런 곳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서.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너무 아깝다.'
그 생각밖에 안 났다.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겹겹이 이어지는 오름들.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산방산. 모슬봉. 이곳을 보면 이곳에 취하고, 저곳을 보면 저곳에 취했다.
산 정상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 올라가는 게 힘이 들지만 정상에서의 풍경은 그 힘듦을 다 잊게 만든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기분. 저 멀리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내가 저기 저 조그만 곳에서 살아가는구나. 저 쪽엔 저런 풍경도 있었구나. 한눈에 전체 풍경을 보니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마음이 넓어진다. 그래 자연은 이토록 위대하니 나도 자연만큼 열심히 한 번 살아보자란 생각이 든다.
20분 정도면 정상에 올라가서 시원한 360도 파노라마 뷰를 선물해주는 '원물 오름'을 소개해보자 한다. 서귀포시 블로그에서 추천해준 글에서 이 오름을 발견했다. 집 근처 인 데다 사진을 보니 360도 시야가 다 나온다. 개인적으로 오름에 올랐을 때 주위가 막혀있으면 답답해서 싫은데 여긴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동광 육거리 근처에 있다. 오름 근처에 충혼탑이 있어 주차장이 아주 넓다. 주차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원물 오름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정자 하나와 연못이 하나 보인다.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오름 입구가 보인다. 그런데 리을자 입구 끝에 철조망이 걸려 있어 몸을 숙여 아래로 통과해야 한다. 말이 못 나가게 해 놓은 철조망이라고 하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일반적인 산길이다. 한여름에 자란 풀들이 길을 차지하고 있다. 따끔따끔한 가시풀도 많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잘 닦인 데크길이나 야자수매트 깔린 길을 좋아하는데 알려지지 않은 오름이라 어쩔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을 디딜때마나 메뚜기가 놀라 '떼떼 떼'하며 날아간다. 이리 폴짝 저리 폴짝이다. 이름 모를 들꽃도 다양하다. 노랑 보라 분홍 하양 하나같이 안 이쁜 꽃이 없다. 호랑나비 노랑나비들이 꿀을 먹느라 바쁘다. 노랑나비도 자세히 보니 나비 날개에 검은 줄이 보인다.
10분 정도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하얀 뭉게구름 아래로 산방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양쪽으로 군산과 단산이 특이한 사자 귀와 박쥐 모양을 보이고 있다. 여기 길은 안내판이 없다. 대신 빨간 화살표가 풀 위에 칠해져 있다. 그곳을 따라가면 된다. 말똥이 많으니 안 밟도록 조심하길 바란다. 말똥 안에 노란 민들레꽃이 피었다.
'우와'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정상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주변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감격을 줄 줄이야. 솔개 한 마리가 오름 정상 바람을 타고 곡예비행을 요리조리한다.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쉥하니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고 보니 제주의 매력은 탁 트인 하늘을 보이는 시야다. 조금만 벗어나면 도시처럼 조각하늘이 없다.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통째로 보인다. 오롯이 하늘 전체를 보는 이 자유로움. 그 자체가 커다란 선물이다.
올라오니 여기 오름 평지다. 축구장 만하다. 풀들이 장악을 했지만 간간히 잔디밭도 보인다. 저 앞쪽 풍경이 보고 싶어 뚜벅뚜벅 숲을 헤치고 걸어간다. '캬~' 또 감탄의 연속이다.
360도 제주 남쪽 뷰가 다 들어온다. 한라산부터 시작해 군산 산방산 단산 모슬봉 그리고 이름 모를 오름들이 싹 다 한눈에 시원하게 다 들어온다. 우와, 우와 소리가 입에서 연속해서 나온다.
풍경이 너무 좋은데 안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길이 제대로 안 닦여있어 가시 달린 풀들이 다리를 몇 번 찌른다.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제대로 없어 길이 헷갈린다. 자연 그대로의 오름 모습을 사랑한다면 이쯤이야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내려가는 길엔 이젠 감탄 대신 여유를 가진다. 이곳을 알려야지 이곳을 좋은 분들에게 소개해줘야지, 란 생각밖에 없다. 이곳을 가을에 꼭 다시 찾아야지, 란 생각밖에 없다.
내려가는 길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가야 한다. 중간 지점에서 내려가는 화살표를 따라갔더니 주차장과 멀어진다. 유념하길 바란다. 내려가는 길도 온 사방에서 메뚜기 떼떼 소리다. 나비 짓이다. 꽃무지 몇 마리가 머리를 박고 꿀꽃을 먹느라 내가 쓰다듬어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제야 윙 하며 옆 꽃으로 날아간다.
'원물 오름'
제주에 살면서 처음 들은 이름이다. 이런 오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일반 사람들에게 전혀 안 알려진 오름이다.내가 1시간 정도 오르내리면서 한 사람도 보지 못한 정말 한적한 곳이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오름이 바로 원물 오름이다. 마치 들판에 핀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처럼 말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니 꼭 원픽으로 찾길 바란다. 대신 긴 바지와 스틱과 모자 정도는 챙기길 바란다. 오르고 내리고 하는데 1시간 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