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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만난 제주 맛집 두 곳

by 도도쌤

나가서 사 먹는 게 부담될 정도로 음식값이 많이 올랐다. 올초 2월엔 평균 8~9천 원 하던 곳이 이제는 거의 만원 수준이다. 음식값을 아끼기 위해 가능한 한 집에서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레길을 걷다 보면 김밥만 먹을 수 없다. 열심히 걸은 나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맛있는 집밥 같은 음식을 찾는다. 가능한 한 가격이 싸고 맛있는 집, 가성비가 좋은 집을 찾는다.


1. 안케머리 식당, 모듬 물회(동쪽)


올레길 3코스-b를 역방향으로 5시간 걸었다. 5시간이 걸릴 줄 상상도 못 했다. 산길이라 좀 걸려봤자 3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했는데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올레길 걸으면서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못 걷겠다 싶은 건 처음이었다. 중간에 음식점이 나오기는커녕 집도 잘 안 보이는 시골 중의 시골길이 바로 올레길 3코스-b였다.


거의 쓰러질 듯 도착한 곳이 바로, 안케머리 식당이다. 위치는 동쪽 성산, 섭지코지 아래, 온평항 근처다. 아내가 검색해서 찾은 곳인데 여기 성게칼국수랑 한치물회가 맛있단다.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다.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물회가 당겨 한치물회가 되냐고 그러니 한치는 요즘 안 잡힌다고 그런다. 아쉽다. 한치는 7,8월 두 달 제철에만 나오니 미적거리지 말고 꼭 그때 한치물회를 먹어야 한다.


성게칼국수랑 모듬물회를 각각 시켜 나눠먹으려니 그것도 안 된다. 음식 하나당 기본 2인분을 시켜야 한다. 아쉽다. 또. 더위에 지친 아내와 나, 최종 선택한 음식은 바로 '모둠 물회'다. 2인분 36,000원짜리 오늘 시킨 모둠 물회가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했다.


기본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하나 같이 집밥 반찬처럼 맛있다. 멸치도 간이 잘 되어있고, 콩나무 무침, 가지 볶음도 맛있다. 얼마나 허기가 졌던지 반찬만 먹었는데 시야가 선명해진다. 희한한 경험이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반찬만으로 밥 두 공기는 거뜬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대형 물회 그릇이 등장했다. 보는 순간 압도당했다. 주황 성게알이 그릇 중앙에 있고 그 아래에 얇게 썰은 전복들이 쫙 펼쳐져 있다. 그리고 각종 미역들과 야채들이 듬뿍 담겨있는데 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국물 한 입을 떠먹었다. 새콤하다. 이어 달콤한 향이 살짝 혀끝에 맴돈다. 된장 베이스가 아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많이 새콤함 맛에 입안이 얼얼하다. 그런데 계속 그 국물 맛이 당긴다. 앞접시에 들어서 전복과 미역을 통째로 씹어 먹는데 그제야 몸이 제 역할을 한다. 지친 마디마디가 풀리고 흐려졌던 시야가 선명해지고 몸 구석구석 장기들이 제 역할을 한다. 한 끼의 음식이 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음식을 먹으면서 깨닫는다.


국물 조금 남기고 반찬이랑 모둠 물회를 깨끗하게 비웠다.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못 걸을 줄 알았는데 걸어진다. 모둠 물회와 반찬과 밥심이다. 음식의 힘을 제대로 느꼈다. 재방문 의사 100프로다. 다음에 조금 추운 날 온다면 성게 칼국수 2인분을 꼭 먹어보고 싶다.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글 적는데 모듬 물회 새콤한 맛이 저절로 떠올라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아이 참!


2. 어촌계 식당, 정식(서쪽)


아내 친한 언니가 제주 2달 살이하러 내려왔다. 첫 한 달은 차귀도 근처에 집을 얻어 지내고 있다. 차귀도랑 수월봉은 가 봐서 잘 아는데 근처 가 볼 곳이랑 식당은 잘 모른다. 아내가 혹시 근처에 괜찮은 여행지랑 맛집을 알려달라고 하니 바로 알려준다.


아내 언니가 직접 부모님 두 분 모시고 가서 부모님 두 분이 BEST of BEST라고 했던 곳을 소개해준다. 이름이 바로 '어촌계 식당'이다. 식당 겉은 허름한데 정식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네비에 식당을 찍고 가니 20분 정도가 걸린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인 1시에 도착을 했다. 겉은 허름한데 안은 이 시각인데도 손님들이 제법 많다. 다들 푸짐한 반찬에 열심히 밥을 먹고 계시다. 내 눈에 들어온 어느 탁자 위의 맥주가 내 두 눈을 마구 유혹한다. 그냥 참는다.


여기 점심엔 정식밖에 안 된다. 정식 가격은 만원. 정식 2인분을 시키니 바로 기본 반찬이 세팅된다. 음 아내랑 내가 좋아하는 집 반찬이다. 가지무침, 무 무침, 도토리묵, 굴무침, 두부 무침, 배추 겉절이,.... 그리고 꼬막. 제주에서 식당을 여러 번 가봤는데 꼬막이 나오는 건 처음이다. 아내도 바로 맛을 보더니 맛있다고 한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딱 그 맛이다.


밑반찬들이 약간 달달하면서 손이 계속 간다. 그러다 반찬 사이로 고등어구이랑 수육이 등장했다. 그리고 밥과 국이 나왔다. 국은 자세히 보니 된장 베이스 물회랑 비슷하다. 숟가락으로 떠먹어봤는데 맛있다. 내가 제주사람이 다 돼서 그런가, 아님 여기 된장 베이스 국물이 맛있어서 그런가, 계속 떠먹어진다.


언니 부모님이 맛있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반찬들이 하나같이 신선하다. 고기를 올려 쌈에 싸 먹으니 그것도 좋다. 고등어 살도 탱글탱글하니 맛있고, 밥과 국과 반찬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내 요것조것 젓가락질하느라 바쁘다. 20분 만에 반찬들이 다 사라졌다. 여기가 올레길 12코스 해안길에 있는 곳인데 재방문 의사 100프로다.



맛집 두 곳을 운 좋게 알았다. 한 곳은 5시간 걸어서 허기가 진 나를 살린 물회였고, 한 곳은 오랜만에 엄마 집밥이 생각날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했던 정식이었다. 각각 서쪽과 동쪽 바닷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 음식값이 많이 올랐다. 간혹 맛있는 밥이 먹고 싶다면, 혹시 이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추천한다. 평타 이상은 보장하니 꼭 가셔서 즐거운 입맛과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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