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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기정 바당길, 그 길에서 만난 설렘, 나, 편안함.

제주 해안 산책길(강추)

by 도도쌤

다 올레길 덕분이다. 올레길 패스에 도장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나의 제주 사랑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범섬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었던 올레 7코스, 산방산과 송악산의 신비로움에 취해 걸었던 올레 10코스, 직접 걸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나만의 포인트들이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른다. 새로운 아름다운 제주 길을 만날 때의 그 벅찬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오늘도 그 하나를 만나고야 말았다. 바로 올레길 12코스에서 만난 '생이기정 바당길'이다.



여기 길을 걸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다시 온다면 꼭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좋은 사람들 데리고 꼭 걷고 싶은 길이라고. 아이들 데리고 일몰 보러 오고 싶다고.


그런데 여긴 왜 그동안 몰랐을까? 제주에 와서 사니 이런 좋은 길도 운 좋게 만난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 보니 제주의 숨겨진 보석이라고까지 한다.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느꼈을 기쁨과 감탄이 이제 막 걸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길에서 만난 설렘, 나, 편안함이라는 세 개의 단어로 '생이기정 바당길'을 압축해보고자 한다.


이 길은 설렘을 준다. 차귀도라는 신비한 섬 자체가 놀람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처음 차귀도란 섬을 봤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오징어들 뒤로 정체불명의 섬들이 괴상한 모양으로 서 있는데, 이런 곳이 제주에 있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 지경이었다. 네모 반듯하고, 산 모양의 일반 섬과는 달리 여기 섬들은 모양 자체가 희한했다. 모양만 그러랴, 색도 붉은색들이 섞여있는데 가히 신비함 그 자체였다. 다가 배 타고 차귀도를 한 바퀴 걸어봤더니 감동이 10배는 넘게 전해졌다.

그런 신비한 차귀도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 누운 섬의 뒷모습도 여기서는 보이는데 다리가 나와서 신기했다. 각자 특이한 모양으로 서 있는 바위들이 모여 하나의 섬이 된 차귀도, 그 차귀도를 보며 걸을 수 있다는 자체가 설렘이었다. 모서리를 돌면 어떤 길이 나올까, 해안 숲길을 빠져나오면 또 어떤 모습이 나올까, 걸으면서 내내 나를 궁금하게 했다. 한 모퉁이 돌 때마다 새로운 그림 작품을 선사했던 곳, 설렘 자체를 선물하는 곳이 바로 이 길이었다. 살짝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지만 절벽과 바다가 주는 아찔함 속에 전해지는 설렘이 가득한 곳이다.


이 길은 를 만나게 해다. 저 멀리 외롭게 당당하게 서 있는 차귀도 자체가 내 모습이다. 두 발로 갈 수 없는 바다 건너편에 있는 차귀도, 어쩌면 나의 과거 모습일 수도, 현재 모습일 수도,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 섬을 보고 또 본다. 차귀도도 나처럼 무던한 듯 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온갖 파도를 맞아가지만 굳건히 이겨내고 있다. 그 힘듦을 이겨냈기에 내 눈엔 빛이 난다. 차귀도를 바라보면 볼수록 내가 차귀도가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잘 살아냈다고, 잘 살고 있다고, 잘 살 거라고 차귀도가 내게 말을 하는 것 같다. 아니 내가 그렇게 차귀도를 바라보며 나와 어느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뒤돌아보기엔 이처럼 좋은 길이 있을까 싶다. 이 길은 온전히 나를 만나는 길이다.


이 길은 편안함을 준다. 억새밭 뒤로 펼쳐지는 차귀도와 바다가 주는 묘한 편안함이 존재한다. 이 길엔 올레길을 걸으면 흔히 만나는 나무데크길도 없고, 야자수매트도 없다. 인공 요소가 하나도 없는 자연 흙길과 돌길. 그 길을 밟는 자체가 주는 편안함이 참 좋다. 게다가 거의 평지길이다. 그래서 걷기가 참 편하다.


서쪽 제주 섬 모양 자체의 곡선미가 훤히 드러나기에 그 광경이 주는 부드러움도 편안함을 주는데 한몫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내와 친구들 모습이 이 해안 길 안에 쏙 들어오며 걸어오는데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들의 걸음걸이마저도 내겐 편안함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생이기정 바당길'. 걸으면서 내내 어른들 모셔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차귀도란 자체가 주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곳,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곳, 내 마음에 편안함을 선사해주는 곳, 이 '생이기정 바당길'을 만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길을 꼭 한 번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에 '생이(새) 기정(벼랑) 바당(바다)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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