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철새도래지'에서 철새들을 보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여기가 성산 근처라 저번에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고등어 쌈밥'식당을 검색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휴일이다. 제주도는 맛집 가는 날엔 희한하게 휴일인 날이 참 많다. 아~~ 상추 위에 올린 하얀 밥에 야들야들한 고등어살과 입맛 당기는 김치가 올라가면 끝내주는데... 아쉽게도 다음으로 기약하자.
두 번째 맛집이었던 '종달 아귀찜'의 아갈 찜도 생각난다. 매콤한 아귀찜 먹으면서 갈비라는 보물을 찾아 먹을 때의 그 희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종달아구찜도 오늘 휴일인데!"
검색한 아내가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두 번 연속으로 검색했던 맛집이 휴일이라니 어디 가야 하나 난감하다. 그러다 중문 사는 친구가 가보지는 않았는데 맛집이고 가성비가 괜찮다는 식당을 하나 알려준다.
'지은이네 밥상'
성산, 지은이네 밥상
'하도 해수욕장'에서 출발하니 15분 만에 금방 도착한다. 어떤 집일까 궁금해서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제법 많다. 자리 앉으러 가는 길에 사람들 먹는 걸 보니 이 집 대표 메뉴인 '비빔밥'을 제일 많이 시킨다. 우린 뭘 시킬까 고민하다 비빔밥 2개, 청국장 1개, 보말 미역국 1개를 시켜 이 집 대표 메뉴를 다 먹어보기로 한다.
반찬이 나왔는데 5가지 찬이 다들 정갈하고 맛있다. 드디어 주문한 비빔밥과 청국장이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비빔밥을 주문하면 청국장이 딸려서 나온다. 그러니 따로 청국장 메뉴를 시킬 필요가 없던 거다. 청국장을 시킨 나 속으로 땅을 치고 후회했다.하하하.
주문한 메뉴가 다 나왔는데 갑자기 서빙하시는 분께서 '갈비찜'을 식탁 위에 툭 올려놓고 가신다.
메뉴
"어! 저 우리 갈비찜 안 시켰는데..."
"잘못 갖다 준거 아니가... 얼른 갖다 주라!!"
주인아주머니께 갈비찜 안 시켰다고 친구가 말하러 갔는데 돌아오는 친구 두 눈이 똥 그래 가지고는 엄청 놀라면서 말한다.
"이거 서비스라고 하는데..."
친구의 놀란 표정이 잊을 수가 없다.
"야! 갈비찜 서비스로 주는데 뭐가 남노... 우와 진짜 여기 대박이다!!"
서비스 갈비찜. 참 그립다
그러면서 친구가 맛을 보는데 맛있다고 그런다. 나도 공짜라고 생각하니 갈비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오늘 가려던 맛집 두 곳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서비스 갈비가 평정을 해 버렸다. 점심 맛있게 먹고 나더니 친구가 그런다.
"야! 내 이곳 근처에 오면 꼭 다음에 손님 데리고 오고 싶은 곳이다."
그 말에 나도 덩달아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갈비찜에 충격을 받아서 밥 다 먹고 나갈 때 사장님에게 다음에도 오면 갈비찜 주냐고 물어봤더니 이러신다.
"그날 사정에 따라 서비스 메뉴는 달라집니다."라고.
서비스 메뉴가 달라지든 서비스는 항시 나온다는 성산 '지은이네' 밥집. 갈비찜 나오는 날 꼭 다시 찾고 말 거다!
갈비찜 서비스에 배를 든든히 하고 걷기 시작한 올레길 2코스. '제주 동 마트' 앞에서 중간 패스 도장을 찍고 평소 걷고 싶었던 광치기 해변 맞은편 길을 걷는다.
올레길 2코스 초반
지도에서 보다시피, 빨간색 선으로 한국지도 거꾸로 된 모양으로 쭉 길이 이어져있다. 성산 쪽 길을 갈 때마다 여기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여유 있게 걷고 싶었는데 참 잘 됐다 싶었다.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다. 억새며 철새며 저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3박자가 고루 갖춘 길이다. 특히나 여기 새가 많은데 '하도 철새도래지'보다 훨씬 눈으로 가까이 새들을 볼 수 있다. 혹시 새가 놀래지 않을까 발소리도 조심조심 말도 소곤소곤 거리며 걷는다. 새들이 우리 인기척을 느끼고는 쪼르르 물살을 가르며 도망간다.
성산과 철새들
"야! 여기 아이들 목에 망원경 하나씩 메게 하고 철새들 관찰하게 하면 진짜 좋겠는데!"
"맞제! 다음에 아이들 데리고 한 번 더 오자!"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철새 교육의 최고 장소가 아닐까 친구랑 이야기해본다. 다양한 새들을 보고 다양한 해안 생물을 만나기에 참 좋다는 생각이 가득 든 걸음걸음이었다.
여기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식산봉'이다. 해안선만 따라 걷다 조그만 오름을 오르니 뭔가 신선하다. 숲 속이라 공기가 갑자기 좋아지는 기분이다. 조금 무료해졌던 마음이 다시 새로움으로 가득 찬다. 그 길을 따라 정상에서 성산 풍경도 바라다본다.
식산봉
저 멀리 장화를 신고 조개를 캐러 나온 가족들 모습이 참 정겹게 보인다. 시간만 되면 여기 아이들과 함께 와서 조개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새가 한 마리 보이는데 백로가 아니다. 부리 모양이 밥주걱 모양이다. 태어나서 처음 본 저어새가 물고기를 잡느라 모래를 저어가며 열심히 먹이사냥 중이다.오늘 천연기념물 저어새도 운 좋게 만난다.
처음 걸었던 장소로 돌아가는 길에 억새가 양옆에서 박수를 쳐준다. 그게 뭐라고 지친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아름다웠던 제주 올레길 2코스 해안길 탐험이었다.
우리가 걸었던 길이 나중에야 '성산읍 조개 바당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레길 2코스 시작인 이곳, 철새를 보며 성산을 만끽하고 싶은 분에겐 최고의 산책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길도 좋았지만 '지은이네 밥상'에서의 서비스 갈비찜은 계속 생각이 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