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광개토대왕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

아빠 육아일기

by 도도쌤

"고구려 세운 백제왕 백제 온조왕 알에서 나온 역거세..."

우리 아들. 요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 푹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기 전에 그리고 수시로 노래를 하는데 뭐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들어본다. 가사가 들리 들리는데 창작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린이날 황진이가 되는가 하면, 무적 임꺽정도 되고, 고구려 세운 백제왕이 되기 일쑤다. 가사가 틀린 걸 우연히 들은 우리 딸 가만히 넘어가지 않는다.

"고구려 세운 동명왕이야. 백제왕 아니고! 아이고!"

그 소리를 듣고도 우리 아들 "고구려 세운 백제왕"이라고 당하게 목청껏 부른다. 십년을 사랑받아온 이 노래. 우리 아들내미도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가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추석 당일, 차가 없어서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한 시간이 넘는 지루한 길에도 우리 아들 내 옆에서 쫑알쫑알거리며 즐겁게 버스 여행을 한다.

"우와! 아빠, 파란색 버스 봤어요? 방금?"

"아빠, 저기 저기 경찰차도 가요. 보세요."

아들내미 한시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할머니 댁에 거의 다다를 무렵 아들이 불쑥 내게 이런다.


"아빠, 광개토대왕 알아요?"

"어, 알지!"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

".... 뭐?"

"지금 어디에 있냐고요?"

"지금은 없지. 돌아가시고 없지."

"왜요?"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셨어. 죽었지."

"아빠, 이순신 장군은 어디 있어요?"

"어! 이순신 장군도 돌아가셨지."

"왜요?"

"나이가 들면 사람은 다 죽는 거야."

"싫은데... 아빠, 술 많이 먹지 마세요."

"그래...."

아빠 술 많이 먹으면 100명의 위인들처럼 빨리 죽을까 봐 걱정하는 우리 아들이다. 외할아버지가 최근에 술 많이 먹어서 외할머니랑 싸움(=큰 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을 자주 들은 모양이다. 그걸 기억하고 내한테 말한 거다. 어쨌던 우리 아들 아빠 생각해줘서 너무 고마워!


할머니 집에서 쥐포튀김과 사과, 배를 잔뜩 먹고 집에 들어온 아들. 자기 전에 또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또 불쑥 이런다.


"아빠, 빤짝빤짝 응길또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아들 누구?"

"빤짝빤짝 응길또 요."

"아! 홍길동"

"네, 홍길동. 빤짝빤짝 홍길동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왜? 아들?"

"멋있어서요."

"그래?"

"역사는 흐른다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100명의 위인들에 푹 빠져 있는 우리 아들.

이순신 장군과 홍길동을 좋아하는 우리 아들.

그분들이 죽어서 마음 아파하는 우리 아들.

아빠도 죽을까 봐 술 먹지 말라는 우리 아들.

그 아들의 말들이 고마워 여기에 남기는 나다.


날 잡아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 아들한테 제대로 한 번 가르쳐 줘야겠다. '어린이날 황진이'가 계속 생각나 혼자 키득키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