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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Oct 30. 2021

'아빠 늘어도 사랑할개요'

아빠 육아일기

재미있거나 나를 깜짝 만들게 하는 아들 딸의 말을 폰에 적어 둔다. 그 기록들을 어느 순간 딸이 읽고 재미있다고 그런다. 그러면서 귀신같이 '베리'라고 검색을 해서 베리 프로그램을 보는 딸이다. 여섯 살치곤 대단하다. 내가 가르쳐 준 타자 연습을 이렇게 잘 활용한다.


아무튼, 한 번씩 영상을 보다 들키면 "아빠, 안 할게요." 하면서 폰을 주는 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다. 동생이랑 신나게 놀던 딸아이가 조용하다. 뭔가 조용하면 폰을 보고 있다는 말이다.


"딸, 폰 그만 보고 아빠 주세요."

"아빠, 나 편지 쓰고 있어요."


'뭐?'


아이말을 적어 놓은 폰 노트에 딸이 독수리 타법으로 자음 한자 모음 한자를 쳐서 뭔가를 적고 있다. "아빠, 다 됐어요!" 하고 보여주는데 진짜 감동이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쳤을 딸, 글을 써서 마음속의 말을 할 줄 아는 딸, 하트까지 넣는 센스, 딸이 고마워 나도 "우리 딸 사랑해요!" 하면서 한참을 안아줬다.


사실, 딸아이에게 이름 말고는 글자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워낙 일찍부터 글을 스스로 읽기 시작해서 쓰는 건 알아서 하겠지 하며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는지 몰라도 한 번씩 그림과 글자 몇 개를 적어 오는 게 다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억지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가 나의 지론이다. 친구의 영향인지, 선생님의 영향인지, 나의 영향인지, 책의 영향인지, 영상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딸 아인 이제 자신도 스스로 뭔가 쓸 필요가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아빠 사랑해요'를 쓴 며칠 후 진짜 편지가 탄생했다.


커다란 스케치북에 뭔가를 쓰는 딸이 궁금해서 딸에게 묻는다.


"딸, 뭐 하고 있어?"

"아빠, 저 편지 쓰고 있어요."

"어?"

"편지요. 저기 가 있으세요. 제가 이따 보여줄게요."


조금 있다가 가져온 딸의 편지. 감동 그 자체다. 편지 봉투 겉면도 나름 있다.

 000이~ 아빠 한대 ♥ 아빠~
 000이 아빠 사랑해요♥ 아빠 늘어도 사랑할개요
 000이~

'아빠 늙어도 사랑할게요.'가 포인트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아들 딸 어린이집에서 데려 오면서 길에서 늙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요?"

"왜?"

"엄마 아빠가 안 늙으면 좋겠어요."

"왜?"

"그럼 할아버지 되면 죽잖아."


사람이 늙으면 할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면 곧 죽는다는 것을 이제 아는 아들 딸이다.


아무튼 나한테 편지를 주고선, 이내 동생한테도 편지를 줘야겠다며 스케치북 한 장을 찢어서 뭔가를 적기 시작한다.


"다 적었다."

"딸, 동생 편지 아빠가 봐도 돼?"

"네"

동생에게 쓴 딸의 편지다.

000 한대
00아 나주앤 못 만나지만 사랑해♥
00 이한대~


'나주앤 못 만나지만?'


이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 딸에게 물어본다.


"딸, 왜 나중엔 못 만나?"

"어른되면 헤어져서 못 만나요."

"왜 헤어져?"

"어른되면 결혼해서 살아야 해서요."


순간 '띵'하다. 다 맞는 말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른되면 결혼해서 따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 딸 참 생각이 깊다. 그런 누나의 마음을 아는지 아들내미도 누나의 편지를 받고 "고맙다"라고 그런다. 누나의 편지를 언제 읽어서 누나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까? 하하하하하


아들 딸 때문에 내가 요즘은 더 사랑받는다. 이젠 이 녀석들 소소하게 아빠한테 편지로 말로 사랑을 줄줄 안다. 늙어도 아빠를 사랑하겠다는 딸, 아빠가 죽는 게 싫은 아들이다. 그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거다.


하루하루 몸만 크는 줄 알았는데 마음의 깊이도 이렇게 크고 있을 줄이야. 너희들 덕분에 내가 다 세상을 새로 사는 느낌이다. 아빠가 죽음과 늙음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더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고맙다! 아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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