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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Nov 23. 2021

"잉어빵, 사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거야!"

아빠 육아일기

"아버님, 5세 반 이제 낮잠 자는 시간은 줄이려 합니다. "

"아! 예. 알겠습니다."


어느 날인가,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5세 반은 낮잠 줄이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속으로 '아! 둘째도 이제 많이 컸네! 벌써 내년엔 6살이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오에! 이젠 일찍 자겠네. 그럼 저녁에 자유시간이 좀 많아지겠네!'라는 생각 미소가 한가득 지어졌다.


그런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 낮잠 하나가 아들내미와의 길거리 잠투정과의 사투로 이어진 것이다. 그 잠투정을 길에서 받을 거라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이다. '아! 아들내미의 떼쓰는 모습에서 내 어릴 적 아빠한테 떼쓰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난, 추워서 오늘 지하철 타고 싶어!"

"난, 오늘 걸어갈래!"

하원하고 집으로 가는 길, 딸과 아들 의견이 서로 팽팽하다. 딸내민 지하철이 타고 싶다고 그러고, 아들내민 걸어서 가고 싶다고 그런다. 딸내미 말처럼 절기가 '소설'이라 갑자기 한겨울 날씨다. 나도 은근슬쩍 하철이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지하철 타러 가자고 하면 우리 아들내미 난리난리 부릴게 불을 보듯 뻔하다. 결정권을 아들 딸에게 완전히 넘겨주었다.


"아들 딸, 둘 의견 맞추어 봐요! 아빤 둘이 하자는 데로 할게요. 왜 지하철이 좋은지, 왜 걸어가고 싶은 게 좋은지 각자 말해 보세요!"


"난, 추워서 지하철이 타고 싶어!"

"난, 더워서 걸어가고 싶어!"

"난, 빨리 가는 지하철이 더 좋아!"

"난, 바깥세상 구경하는 게 더 좋단 말이야!"

"난, 에스컬레이터 타고 싶어!"

"난, 걸어서 운동하는 게 더 좋단 말이야!"


지하철과, 걸어가는 이유의 장점을 나보다 더 잘 설명하는 딸과 아들이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 뭔가 하나를 결정해야 할 때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지만, 내 인내심이 동이 나지만, 이 방법을 자주 쓴다. 내가 억지로 할 필요도 없이 난 기다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럼, 각자의 좋은 점과 이유를 들어 봄으로써 상대방이 다시 생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5분은 넘게 찬 바람을 맞고 길 모퉁이 서서 이야기 있으니 몸이 떨린다. 딸이 재빠르게 마음을 바꾼다.

"그래, 오늘은 걸어가자! 너무 추워서 걸어라도 가야겠다!"

힘겨운 결정을 한 딸 앞에서 우리 아들 순순히 같이 걸어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또 말을 바꾼다.

"우리 그냥 지하철 타러 가자!"

"뭐, 뭐라고.. 그새 말 또 바꿔?"

"하하하하하하"


아들내미, 딸내미 의견 들어주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그래도 어쨌든 지하철 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려 내 마음이 힘들었지만 길거리에서 다투지 않고 떼쓰지 않고 좋게 마무리되었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 날이 많이 추워져서 그런지 배가 고파서 그런지 우리 딸 살짝 귓속말로 이런다.

"아빠, 배고파. 우리 햄버거 사 먹으러 가자!"

"안돼! 주말에 햄버거 사 먹었잖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네...."

금세 수긍하는 딸이다. 그러면서 두 번째 제안을 한다.

"아빠, 그럼.. 오늘 날이 추운데 잉어빵 먹고 싶어!"


추운 날 잉어빵 생각이 나는 딸, 나도 그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었는데 우리 딸 하연 대단하다.

"그래. 대신 문 열면 사 주는 거고, 문 닫으면 못 사 주는 거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 잠이 와서  비틀 거리며 내 손을 잡고 걷는 아들내미, 누나랑 내가 하는 얘길 들었는지 "오에~잉어빵. 잉어빵. 잉어빵이다." 며 환호을 지른다.


지하철 한 구역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 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마자 잉어빵 장사하는지 안 하는지 빠르게 확인하러 간다. 슬쩍 나도 봤는데 줄이 없다. 잉어빵 기계가 얼음처럼 얼어있다. 아이들 마음도 그새 꽁꽁 얼었다. 뒤늦게 확인한 잠이 오는 아들내미 그 자리에서 얼었다.


"잉어빵.. 잉어빵... 먹고 싶은데... 잉어빵 사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거야!"


딸내민 문을 닫아서 못 먹는걸 쿨하게 인정한다. 그런데 아들내민 잠도 오고 잉어빵도 못 먹게 되었으니 떼란 떼를 다 부린다. 잉어빵 기계 앞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멀찌감치 떨어져 가자고 해도 오지를 않는다. 칼바람이 쌩쌩 바짓가랑이 사이로 들어오고 아들내민 가게 앞에 동상처럼 서 있다. 길거리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엄마한테 뭐 사달라고 했는데 안 사주면 나도 아들내미처럼 저렇게 길거리에서 고함을 지르고 울고 떼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분명히 내 모습이다. 보듬어줘야겠다 싶어 얼른 아들내미한테 먼저 다가간다. 그리고 아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아들, 잉어빵 먹고 싶었는데 못 먹어서 많이 속상하지! 내일 장사하면 꼭 아빠가 사주께!"

"지금 먹고 싶단 말이야! 지금. 지금. 지금."

"아들, 여기 봐봐!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잉어빵이 하나도 없잖아. 아빠가 사주고 싶은데 잉어빵이 없어서 못 사주는 거야!"

아들내미 내 말하기가 무섭게 잉어빵 기계 근처에 와서 꼼꼼히 확인한다.

"잉어빵.. 잉어빵... 먹고 싶은데...."

"아들! 가게 내일 열면 아빠가 꼭 사준다고 약속할게!"


그렇게 그렇게 아들내미를 겨우 겨우 설득해서 집으로 왔다. 아들내미 배도 고프고 잠이 온다.

"아빠, 오늘은 뭐 만들어 줄 거예요?"

"오늘은 아빠가 어묵탕에 김치 볶아 줄게요!"

"와, 볶음 김치랑 어묵탕이다. 좋다 좋아!"


열심히 음식을 요리하고 있는데, 아들내미 딸내미 둘 다 조용하다. 옆을 보니 딸내민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고, 아들내민 잠옷으로 갈아입고 거실 매트 위에 누워서 쌔근쌔근 자고 있다.

'아! 요 녀석 정말 잠이 많이 왔구나! 그래서 그렇게 잉어빵 잉어빵 하며 떼를 썼구나!'

자는 아들을 깨워서 식탁에 앉혔더니 꾸벅꾸벅 다시 존다. 볶음 김치 하나를 맛보더니 산삼 뿌리를 하나 먹은 것처럼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낮잠 그게 뭐라고 이렇게 날 힘들게 할 줄이야. 매일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오는 길 아들내미와의 끝없는 길거리 전쟁이 두렵다. 그 낮잠 하나가 길거리 전쟁으로 치닫게 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 해봤다. 아들내미 딸내미 빨리 재우고 나만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처참히 무너졌다. 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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