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불어도 잘하지 못했지만,
첫 해에는 어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어학원에서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들이 너무 많았다.
모두가 서툴렀고, 모두가 낯설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나를 가리키지 않았다.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나는 프랑스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곳
그건 내가 의도한 선택이었다.
‘그래야 언어가 빨리 늘겠지’라는 단순한 기대였다.
하지만 심리학과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곳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어디에 앉아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화장과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덜 낯설어 보이고 싶었다.
나를 부드럽게 다듬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작 ‘나’는 점점 흐릿해졌다.
그래서 결국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외적인 부분은 바꿀 수 없고,
그러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언어라고.
나는 프랑스어를 붙잡았다.
밤마다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모든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하며
듣고 말하고의 반복이었다.
문장을 외우고 또 외우며,
적어도 내가 하는 불어가 자연스럽게 들리길 바랐다.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전혀 다른 질문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일까?’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국도, 프랑스도… 나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전, 3년 만에 한국에 잠깐 다녀왔다.
익숙할 줄 알았던 거리에서 길을 헤매고,
버스 정류장에서 당황하고,
카페에서 주문할 때 버벅거리는 나를 보고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프랑스에서는 외모와 언어 때문에 이방인 같았고,
한국에서는 시간이 만든 틈 때문에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방인이라는 감정은 ‘어디에 속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여러 세계 사이를 건너는 사람’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예전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7년 동안 프랑스에 살았지만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어디가 나의 ‘정답’인지,
어떤 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지금처럼 잘 지내다 보면 언젠가 답을 찾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