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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복 Oct 20. 2024

후식

후식     



                           

수확기의 수박이 신문에 싸여 있다

밭에 숨은 아이들 같다     


기다리던 친구가 보이지 않아 둘이서 수박을 굴린다

쪼개지는 길

보이지 않던 친구가 밭 사이에서 튀어나온다

자신을 따돌렸다는 친구는 덩굴을 감고 우릴 쫓는데  

  

나쁜 친구가 되어 버린 우린

하우스가 없어도 거칠지 않은 우린

없던 줄이 생긴다

    

노지의 비바람을 견디는 우직한 수박의 자세로

화판을 세우고 뎃생을 한다 수험생의 자세로   

  

호메로스의 이마가 깨지고 검은 피가 흐른다

잘 그려진 석고상은 진짜 같아

넌 서울대는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자세가 안 됐어  

   

잘못된 자세로 친구의 고막이 찢긴다

눈먼 시인은 말이 없고 캄캄한 안쪽부터 금이 간다

쪼개지기 전의 우리가 보이지 않고

    

착한 비밀도 앞뒤가 다르더라

담배 연기가 말을 한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중심이 사라진 오해

화장실 안의 말이 낮게 멀리 번지고  

   

어떤 것은 자라나고 어떤 것은 시드는데*  

   

내부가 흰 가시로 채워진다

줄이 선명한 너는 시퍼렇고 완강하구나

익지 않고도 금이 가는구나

    

수박 맛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으로

한 번도 알맹이를 버린 적 없는 사람들처럼

중심을 오해하며

셋이서 수박을 먹는다

         

*호메로스『일리아스』   



<문장웹진> 2024.9월 발표      











  너는 있거나 없다. 서성이거나 숨어있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겉도는 너. 끝까지 감싸주지 못했던 시간을 후회하며 오해로 인해 홀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학창 시절 친구를 떠올린다.


  잘 안다는 말은 불편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게 있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이 긋고 간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모르고 지나간 나의 허물로 상처받은 이가 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사진-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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