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밤의 미모사들

by 조효복

밤의 미모사들



어둠은 매일 다른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편의점의 풍선 간판이 휘청이고 귀갓길의 나는 가볍다

후드티 안으로 밤바람이 든다 이어폰을 끼우면

내 잎사귀에 키위키위 새소리 해안가에 울리는 리라 소리

어제는 모자를 세다가 잠들었다

하나 둘 셋 셋 셋…

머리가 들어있지 않은 모자와 후드들

고장 난 가로등이 둥둥 떠 있는 골목이다

우린 입술을 찾을 수 없어

반쯤 설레고 반쯤은 무서운 일

낮을 떠난 그림자들이 모여

삐딱한 취기로 모자를 빙빙 돌리고 있다

몸을 붙인 이파리들의 발이 빨라지고

쉽게 합쳐지는 모자는 힘이 세고

밤과 어울리지 않는 모자는

얼굴이 없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곧잘 믿으니까

호주머니 속 맞잡은 다정은 얼마나 환한 얼굴인지

모자는 모자를 피해가고 모자는 어려워

함부로 벗길 수 없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후드를 잡아당겼다

라벤더 꽃밭이 뒤집히고

돌아간 한쪽 뺨을 검은 바람이 내려친다

준비되지 않은 이파리들은

움츠리지 않아도 될 때까지

파도가 돌아올 때까지

어둠을 견디고 있었다





<문장웹진> 2024. 9월 발표







혼자 있는 시간을 무척 좋아합니다. 누구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즐기기에 모자만 한 것은 없지요. 이어폰까지 끼우면 세상은 온전히 내 것 같습니다.


저녁 운동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서면서 두려움이 앞섭니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을 경계하며 온 신경은 모자 너머로 이어폰 밖으로 곤두세우게 되니까요.


cctv속의 모자와 마스크는 사건의 가해자 같아 섬뜩합니다. 내 모습도 그렇게 보일 테지요. 모자는 모자가 두렵고 어렵습니다.








사진-Pinterest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