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그 음악을 기억한다
2005년 1월의 콜카타.
그 시절, 나는 그곳에 있었다.
판디트 자스라지의 굵고 낮은 음성, 자키르 후세인의 손끝에서 폭발하던 리듬,
존 맥러플린이 가부좌로 앉아 웃으며 기타를 퉁기던 모습,
침낭을 둘러메고 콘서트장으로 향하던 청춘의 결기.
나는 그것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고, 무엇보다 마음 깊이 새겼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기억은 흐릿해지는 법이지만, 이상하게도 음악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음은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지만,
어떤 음은 강바닥에 가라앉아 퇴적층처럼 남는다.
그날의 라가는 내 안의 퇴적층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들의 눈빛과 손의 떨림, 숨의 속도를 기억한다.
그것이 내 안에 남은, 살아 있는 소리다.
도버레인과 리멤버 샥티.
그 두 공연은 단지 “좋았던 콘서트”가 아니라,
인생의 어떤 문을 여는 계시의 순간이었다.
나는 그 여정이 나를 만든 하나의 ‘순례’였다고 믿는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울려 퍼진 장소에,
그리고 그 음악을 연주한 이들의 삶에 다가가는 일이다.
그것은 한 곡의 라가가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알랍(alap)처럼,
아주 천천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접근이었다.
나는 스피커 앞에서 듣던 인도음악이 진짜로 울려 퍼지는 무대를 찾아 떠났다.
그곳에서 경외와 환희, 약간의 실망과 갈등을 함께 마주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진짜였다.
2005년 콜카타에서 봤던 자키르 후세인, 하리프라사드 차우라시아, 시브 쿠마르 샤르마.
그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육신은 떠났어도, 그들의 소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그리고 ‘Lotus Feet’ 위에서 살아 숨 쉰다.
이 책은 2005년의 기록을 다시 듣고, 다시 쓰고, 새로이 풀어쓴
하나의 음악적 회고록이다.
내가 이 글을 다시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그때 나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진심을 기억하고 있다.
음악은, 그 어떤 신보다도 오래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 안의 신을 가장 쉽게 깨우는 건
결국, 어떤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몇 해 뒤, 나는 브린다반에 있었다.
조지 해리슨이 사랑했던 그 도시, 크리슈나의 이름이 바람처럼 흩날리던 곳.
갠지스 강의 상류에서 시작된 내 순례는, 그곳에서 한낮의 침묵 속에 닿았다.
아쉬람의 작은 방, 시타르 소리가 새어 나오는 복도,
그 아래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도버레인의 리듬도, 리멤버 샥티의 화려한 음표도,
모두 이 침묵 안에서 하나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음악은 소리로 시작되지만, 결국 침묵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그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모든 음이 다시 돌아오는 자리였다.
브린다반의 아침 공기 속에서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다시 들었다.
라가의 여운, 타블라의 떨림, 맥러플린의 미소,
그리고 내 안에서 여전히 울리던 그 이름,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
그 여정은 아직도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제는, 듣는 자로서의 순례로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