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흩뿌리던 1월 28일 저녁,
우리는 콜카타 외곽 사이언스 시티 대강당 앞에 모여 있었다.
함께 간 일행은 열두 명.
같은 숙소에 묵던 한국 여행자들이었다.
그 누구도 리멤버 샥티가 누군지 몰랐지만,
내 말을 믿고 표를 끊었다.
“명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 타블라 마스터 자키르 후세인이 펼치는 협연입니다.
서울에서는 7만 원짜리 공연이지만, 여기선 2만 원도 안 해요.
만약 후회되면 제가 표값 물어드릴게요.”
그 말에 다들 웃었고, 결국 따라나섰다.
이름도 생소한 이 밴드를 보기 위해
우리는 작은 순례단이 되었다.
공연은 예정 시각보다 30분 이상 늦어졌다.
언제나처럼, 인도의 고위층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 사이 객석은 조금씩 웅성거렸고,
나는 공연장을 서성이다 짜이를 한 잔 더 마셨다.
쏟아지는 겨울비 속에서 느지막이 도착한 고관들이 자리에 앉자,
드디어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가 열렸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존 맥러플린이었다.
가부좌 자세로 앉은 그는, 인도 전통의상 쿠르타 차림이었다.
그 옆에는 자키르 후세인,
그리고 셀바 가네슈(가탐),
U. 슈리나바스(일렉트릭 만돌린),
샹카르 마하데반(보컬)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맥러플린은 인사도 없이 조용히 기타를 조율했고,
다른 연주자들도 악기 하나하나를 점검했다.
그리고 아무 예고 없이 첫 곡이 시작됐다.
<5 in the Morning, 6 in the Afternoon>.
15분 가까이 이어진 이 곡은
재즈와 인도 고전 리듬이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퓨전의 정수였다.
자키르 후세인은 타블라 두 개 외에도
다른 드럼을 하나 더 곁에 두고 번갈아가며 두드렸고,
그 속도와 음색은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타블라로 리듬만이 아니라 멜로디를 만들고 있었다.
가탐을 연주한 셀바 가네슈는
작은 도기 하나로 마치 드럼세트를 연주하듯 음을 만들었고,
슈리나바스의 전자 만돌린은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 악기가 이렇게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샹카르 마하데반은 육중한 보컬을 중심으로,
음성과 타악, 현악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날 무대를 가장 밝힌 이는
역시 존 맥러플린이었다.
그는 연주 중간중간 미소를 흘렸고,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눈을 맞추며 다른 연주자들을 격려했다.
로투스 피트(Lotus Feet), 이는 크리슈나 혹은 신의 연꽃 같은 발을 의미하며, 수행자들은 그 발아래서 머무는 것을 헌신과 해탈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 모습은 마치
신의 발(Lotus Feet) 아래 앉아 경배를 올리는
서양 구도자 같았다.
140분 넘게 이어진 공연은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완주되었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문명의 음악가들이
하나의 라가와 템포 속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동서양의 리듬이 하나 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건 단순한 크로스오버도,
계산된 퓨전도 아니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
나는 표를 물어줘야 하나 싶어 몇몇 일행에게 물었다.
“괜찮았어요? 표값 물어드려야 하나요?”
그들은 웃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어요.
진짜, 인도에 와서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날의 겨울비는 그쳤고,
콜카타의 밤은 조용히 깊어졌다.
그들은 무대에서 떠났지만,
그들의 연주는 여전히 내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