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조명이 어슴푸레해질 무렵,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판디트 하리프라사드 차우라시아. 다만 공연은 오전 5시에 종료되어야 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연 시간이 지연되어 그는 연주를 마치자마자 뭄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날 그의 연주는 라가 랄리트.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허락된 새벽의 음이었다.
탐부라의 드론이 낮게 깔렸다.
하리프라사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고, 대나무 피리는 아주 조용히, 아주 따뜻하게 울기 시작했다.
알랍은 무척 섬세했고, 마치 안개 속에서 부는 숨결 같았다.
그것은 멜로디라기보다는 기도에 가까운 숨이었다.
서서히 파카와즈가 합세했다.
둔탁하고 깊은 울림이 새벽의 고요함과 어우러지며 라가는 생기를 얻었다.
이어서 타블라 연주자 슈반카르가 무대에 올라와, 마지막 2부의 호흡을 함께했다.
하리프라사드의 반수리는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향해 길을 냈다.
그것은 '공연'이라기보다 새벽의 탄생을 위한 의식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가며 이 음악을 기다리는지.
왜 인도인들이 "음악은 영성이다"라고 말하는지.
라가 랄리트가 끝날 무렵, 하늘은 어슴푸레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확실히 느꼈다.
이 음악은 시간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연주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