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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좀 보려다가

by 이경화

굳이 멀리,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더라도, 근처에 꽤 근사한 벚꽃길이 있어서 혼자라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길에 이르자면, 왕복 4차선 도로 옆을 꽤 걸어가야 한다. 이 도시는 언제나 개발 중이라 공사용 트럭들이 많이 다닌다. 그래도 소음과 먼지만 견디면 운동 삼아 걸어가 벚꽃을 볼 수 있다는 일념으로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엔 신호등이 몇 번이나 나온다. 차가 덜 다니고 거리가 짧은 신호등 앞에서는 그냥 건너고 싶은 유혹에 흔들린다. 가만히 서 있으면 대기하고 있는 차들이 나를 답답하게 쳐다볼 것 같단 망상도 하고.

아주 짧은 거리의 신호등 빨간 불 앞에서 어떤 여자분이 가뿐히 건너시기에 나도 조금 눈치를 보다 얼른 건넜다. 한 블록만 더 걸으면 벚꽃길이다!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옆 차도에서 무언가 터지는 굉음이 나고 먼지가 일었다. 나는 최대한 차도에서 멀리 몸을 피했다. 굉음의 주인공인 레미콘 트럭은 서서히 속도를 낮추어 섰다. 먼지가 조금 걷히고 보니 앞서 걷던 여자분이 뒤돌아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머리가 다 아프다고 팔에 뭐가 튀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다친 정도는 아니었고, 나도 먼지만 뒤집어썼다. 계속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던 길을 갔고, 갈라지는 길에서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늘 그래왔듯 먼저 이 사건이 내게 주는 교훈을 찾아내려고 했다. 바로 직전에 하던 생각을 떠올리며, 어림없다 정신 차리란 뜻인가 생각하고. 내가 조금 참고 신호를 기다렸다면 사고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었을 텐데, 그럼 앞으론 신호를 꼭 지켜야 하나. 아니야, 반대로 신호를 지키다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이쪽은 원래 다니던 길도 아닌데 괜히 벚꽃 볼 욕심에 이 길로 온 게 잘못인가. 등등.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확실히 알겠고 중요한 것은 내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집을 나서서 걸음을 빨리하고 신호를 무시하며 무언가가 터질 레미콘 트럭 옆에 딱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하다는 것. 그것 말고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 내 망상일 뿐.

공사판인 이 도시 속에서 나의 작은 선택들은 잘잘못과 상관이 없다. 내일모레 있을 선거에서도 모든 후보들이 개발을 약속하고 있으므로 나의 선택은 여전히 불행을 막을 힘이 없고, 개발을 반대한다고도 나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투표는 할 것이다. 세상을 덜 나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결국 벚꽃길에 다다랐고, 잘 못 찍는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벚꽃은 한창이고, 길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짧고 아쉬운 벚꽃길을 지나 도서관에도 갔다. 그런데, 도서관 앞과 뒤편 숲에도 벚꽃이 한창이었다.

내 영혼의 안식처, 도서관
고양이(둘_한 마리는 거의 완벽하게 숨어 있음)의 안식처는 도서관 뒤 숲인가. 방해가 되겠지만, 앉아있는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고요해 보여서 찍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들만은, 소란한 이 도시에서 고요를 품은 공간만은 계속 남아있길 바라고 믿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먼지를 씻어내며 <리어>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렸다.


이 고요를 위하여
적막을 위하여
그 모든 소란이 필요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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