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는 독일 남부에는 맥주도 있고, 고성도 있고, 로맨틱 가도도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다른 것은 내려놓고 레고랜드와 펀파크에 가기로 했다. 레고랜드와 펀파크 둘 다 꼬박 하루씩은 잡아야 했기 때문에 빠듯한 여행 일정을 고려하면 둘 중 하나만 가는 게 현명했겠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던 레고랜드도, 펀파크도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는 뮌헨에서 렌트한 차를 타고 레고랜드에 갔다.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화려한 입구, 아이의 손을 잡고 향하는 가족의 모습이 다른 놀이공원과 같았다. 입장 후에도 줄을 서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평일인데도 사람들도 붐비는 것도 똑같았다. 특색이 있다면 레고로 만든 볼거리였는데, 특히 입구쪽에 설치된 레고로 만든 세계 여러나라의 명소들은 어른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는 오는 길에 멀미를 했는지 너무 정교해서 레고로 만든 거라는 걸 실감을 못하는지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고, 나중에 닌자고 조형물을 만났을 때만 신나했다. ㅎㅎ
이 모든 게 레고로 만든 거라구.
다리 아파해서 나중에는 유모차를 빌렸는데, 시간이 지나서 사진을 보니 마트 카트 같다. 지친 아이를 웃게 해 준 닌자고.
물 속에도 레고.
레고랜드에서 아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놀이 기구를 타려고 줄을 서는 것이었다. 평일이라 대기가 길지 않은 편인데도 기다리는 걸 못 견뎌했다. 비행기에서 열 한 시간도 견뎠는데 이십분도 못 참는다니 이해가 안 갔는데 나중에 펀파크에서 노는 걸 보고 내가 잘 몰랐구나 싶었다. 기다림을 참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아빠와 함께 닌자 놀이기구를 타고 신나했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엄마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기념품샵에서 산 닌자칼은 여행 내내 들고 다녔는데, 가끔 알아봐 주는 위트 있는 어른을 만나면 뿌듯해하는 게 보였다.
레고랜드에서 나와 펀파크에 가기 위해 아우토반을 달려 뉘른베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져서 깜깜했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잠을 자고 일어나 새벽이 밝아올 무렵에야 창밖으로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요하게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보며 느긋하게 머물고 싶었지만, 놀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에 아침일찍 짐을 챙겨 펀파크로 향했다.
뉘른베르크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레고랜드는 이름만으로 설명이 되지만, 펀파크는 설명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펀파크 역시 플레이 모빌이라는 장난감 회사에서 자기들이 만든 장난감으로 만든 테마파크이다. 그런데 레고랜드처럼 탈것 위주의 놀이공원이 아니고, 다양한 놀이터로 이루어진 공원에 가깝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쌀쌀한 가을 하늘 아래 펀파크 입구에는 키가 큰 안내원들이 서서 간단한 짐 검사를 하고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펀파크에서 가장 좋은 것은 줄 설 필요가 없다는 것. 신나고 스릴 있는 탈것은 하나도 없지만, 배,성, 농장, 동물원, 배를 띄우며 노는 곳, 클라이밍을 하는 곳 등 다양하게 꾸며진 곳에서 아이는 돌아다니며 다른 아이들 틈에서 탐색하고 놀았다.
펀파크에는 물놀이, 모래놀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다 있었다. 라커룸도 넉넉해서 옷을 갈아입고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가을이라 조금 추웠는데, 실내 놀이터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커다란 온실 안에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바닥에는 지형에 변화를 주어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맘껏 뛰어다닐 수 있었고, 머리 위에는 타고 다닐 수 있는 그물이 있었다.
펀파크는 어른이 앉을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앉아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기에 그제야 조금 쉬는 기분이 들었다. 레고랜드는 탈것과 샵들로 꽉꽉 채워져 사실 앉아서 쉴 공간이 별로 없었는데, 펀파크는 자본주의에서 한 걸음 물러난 느낌이었다. 방문자들에게 공간을 관대하게 베푸는 느낌. 그것이 머무는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레고랜드와 펀파크를 둘 다 가 보고 우리 부부는 레고랜드는 좀 더 큰 아이들에게 맞는 곳, 미취학 연령의 아이들이라면 펀파크가 부모와 아이들 모두 좀 더 편안하겠다고 했다.하지만, 알 수 없는 건 아이는 펀파크보다 친구들이랑 간 워터파크가 좋았고, 그보다는 레고랜드가 더 좋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에이, 그냥 우리 좋은 데나 한 군데 더 갈걸 그랬다.
독일에 다녀와서 남편은 여행 사진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태워 여섯살 아이를 독일로 데려간 게 맞았나 싶었던 것이다. 출장으로 독일에 가는데, 휴가를 보태 나와 아이도 함께 가자고 남편이 제안했을 때, 나는 많이 망설였다. 가서도 여행의 고비마다 아이 앞에서 많이 다투었다. 그래서 돌아보면,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함이 가장 크게 남아 있다.
하지만, 여행자가 어리석었지 독일은 아이와 여행하기 좋은 나라였다. 우리는 두 테마파크 말고도 뮌헨과 푸랑크푸르트의 여러 미술관, 독일박물관, 성 등을 방문했다. 되도록 아이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골랐지만, 얼마나 좋았을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그곳에서 본 것들을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독일사람들의 친절함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낯선 상황에서도 즐기고 다리가 아파도 의젓했던 아이의 모습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