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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만든 무덤

제주에서 돌아와서

by 이경화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밭에 만들어진 무덤이었다. 관광지와 맛집을 오가느라 섬 안쪽 도로를 달릴 때가 많았는데, 숲이 지나가고 밭이 나오면, 비가 와서인지 사람은 볼 수 없고, 밭을 지키고 있는 작은 무덤을 여러 번 마주쳤다. 제주의 무덤은 아이가 흙을 토닥여 두꺼비집을 만들고 돌로 둘레를 둥글게 만들어 놓은 듯 낮고 작았다. 육지의 무덤은 그에 비하면 더 크고 높다.

내 아버지의 무덤도 밭에 있다. 아빠가 고구마를 심고, 밤새 멧돼지로부터 지키고, 캐내고 힘겹게 실어나르던 밭에 아빠는 묻혀 있다. 장례를 치를 때는 정신이 없어서 아버지를 밭에 묻는 이유를 몰랐다. 아버지를 묻을 땅을 포크레인이 난폭하게 파는데, 그늘에 서 있던 공무원인 고종사촌이 밭에 무덤을 쓰면 안 된다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야 하는 줄 아는 우리들은 ‘그럼 아빠를 어디에 묻어드려야 하나’ 겁이 났지만, 고모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사촌의 등을 세게 때리는 것으로 소동은 끝났고, 그 사이 땅은 다 파이고 아빠의 관은 땅속으로 내려졌다. 곧, 흙으로 덮였다. 모든 게 너무 빨랐다.

아빠를 그곳에 묻고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돌아가신 과정도 마음 아팠지만, 하필 밭에 묻어 드렸다는 게, ‘거기 묻히면 안 될 곳’에 묻혔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홀로 일하시던 곳에 홀로 묻혀 계신다는 게 죄스러웠다. '사이토 마리코'라는 일본의 시인은 한글로 시를 썼는데, 우리나라의 둥근 무덤을 소재로 ‘토장(土葬)’이라는 시를 썼다. 그 시도 아름답지만 후기도 인상 깊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 내가 너무나 좋아하던 고모가 돌아가셨다. “부드러웠던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이 순간”이란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 사람이 죽은 뒤 신체의 부피가 사라지는(납작해지는 느낌) 것이 슬펐지만 한국의 무덤의 둥근 모양이나 풀로 덮인 그 질감 등을 보았을 때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사이토 마리코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 중에서)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의 무덤은 납작하고 무거운 돌로 되어, 차가운 느낌이다. 여름 도쿄를 여행했을 때 무덤 주변의 그늘에서 쉬며 낮잠 자는 사람을 봐서인지, 시원하다는 기억까지 내게 남아 있다. 거기다 참배하는 사람은 돌에 물을 뿌린다. 그런 무덤에 비하여 우리의 무덤은 더 포근한 느낌이긴 하다.

그러나, 시집을 읽고 몇 년 뒤 내 아버지의 무덤을 흙으로 둥글게 만들고 나니, 무덤은 내게 그 부피만큼의 죄책감이고 부담이었다. 엎드려 빌어도 대답하지 않는 둥글고 완고한 등 같았다. 차라리 납작하고 차가운 무덤에 뺨을 대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제주에서 낮게 웅크린 무덤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밭에서 일하다 밭에 묻힌 사람이 내 아버지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사랑을 주고 죽은 사람은 죽어서도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깨달음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사 년이 지난 이제야 엄마에게 왜 아버지 무덤을 밭에 만들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유를 설명해 주며, 너희랑 의논한 게 아니고 내가 혼자 결정했으니 이유를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버지가 그곳에 묻히길 원했다고 하신다. 그 밭은 산과 가까워 일하다 허리를 피면 바람이 아주 시원하게 부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짬이 날 때 친구들을 불러와 밭가에서 좋아하시는 술을 나눠 마시기도 하였다. 나와 동생들도 가끔은 그곳에서 일손을 거들고 아버지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그곳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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