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빠 관찰기록 4.

"너도 어서 집에 돌아가서 쉬어야지"

by 요를레희요

의료대란.


건강상 위중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지난 몇 년 의료대란을 체감해 보았을 것 같다.



아빠의 상태가 호전되는 게 보이질 않아

가족들의 걱정은 점점 더 깊어졌다


매일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상태를 확인했지만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에서

가족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말수가 없던 아빠가

말이 더 없으니

환자 본인의 입장을 들을 수 없다는 게

가장 곤란한 상황이기도 했다.



당초 아빠의 수술 이후

대학병원 머물면서 경과를 다 지켜보고 싶었던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의료진은 부족하고,

더 중한 환자를 돌봐야 하는 대학병원의 현실적인 문제로

그렇게 병원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아빠는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기에

투석시설이 있는 몇 없는 병원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가족의 선택은,

개중에서 관리가 더 잘되는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면서

외래 진료만 대학병원에서 보는 것.


아빠의 수술 후 추이가 걱정된다는

현재 아빠 상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한 대학병원 측에서

외래 진료 일정을 당겨주었다.


이 또한 배려였다.



외래 진료날

어제에 비해 급격하게 수치가 나빠진 아빠의 상태를 보고

수술을 담당했던 교수님께서

집중관리를 받을 수 있는

중환자실 전원을 추진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상급병원의 중환자실로 전원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에 아빠가 입원해 있던 일반병원의

부원장님의 소견도 큰 역할을 했다.


입원해 있던 병원의 부원장님께서

더 좋은 환경과 시설이 구비된 상급병원에서

집중관리하여 살펴봐야 하는 이유를

너무나 꼼꼼한 소견으로 남겨주셨다.


그렇게 24시간 아빠는

지난한 검사와 이동을 반복하며

피곤한 하루를 꼬박 보냈다


외래를 가던 당일날 오전만 해도

아빠는 통증이 심했던 탓에

화가 무척 많이 나 있었다.


기운이 없어서 목소리도 안 나던 아빠였는데

소리도 지르고 과격한 움직임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행하고 있던 자식이 하는 말엔

다 귀 기울여 듣고, 하자는 대로 따라주어

오후에 진행된 각종 검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빠는 그동안도 유동식만 먹었는데

높아진 염증수치로 '금식'상태가 되었다.


혹시 몰라

"아빠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라고 물어보자

"없어, 배 안 고파, 걱정 마"

라는 대답을 했다.


"너도 어서 집에 돌아가서 쉬어야지 계속 이렇게 나와있으면 집에 있는 애들은 어떡하냐"


늦은 밤까지 병원에 있던 언니에게 아빠는 또박또박 말을 전했다.


밤이 되었을 때 아빠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고

차갑기만 했던 손이 조금은 따뜻해져 걱정되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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