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빠 관찰기록 21.

명약, 배려

by 요를레희요

올해는 가까운 사람들의 부친상 소식이 많았다.

조용하던 일상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가족의 영원한 부재.


나이를 먹어가며 깨달은 것은 중 하나는

누군가의 슬픔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면 감히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슬픔에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빠를 보내드리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냥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밥을 먹다가 아무렇지 않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으니 이건 내가 어떻게 조절할 영역이 못되었던 그때.

말을 하다 목이 메거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순간들도 잦았다.


그때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물 흐르듯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함께했다.

특별한 위로의 어떤 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은 아주 섬세한 배려였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는 위로를 받았던 시간들이었다.


시간은 흐른다

나 혼자서 보냈어도 시간은 흘렀을 것이고,

당장은 슬픔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기분마저도 시간이 흐른 만큼 희석될 테니 혼자였더라도 그 시간은 견뎠겠지만, 주변의 수많은 배려 덕분에 일상으로 완만하게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배려 덕분에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도 새로운 것 앞에선 두려운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어른일수록 낯선 길이 아닌 익숙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살면서 쌓이게 되는 나 자신 외에도 나와 마찬가지인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전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도 하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아무리 경험해도 적응하기 어렵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감정은 예외다.

만약 누군가를 극도로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은 쉬워지겠지만, 재미는 덜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50대 중반에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그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아빠가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그때의 아빠보다는 어리지만, 내가 아빠와 비슷한 나이에 아빠를 보내드리게 된다 해도 지금처럼 엉엉 울 것 같다.

겪어보지 못한 낯선 상황과 슬픔이 나를 감쌀 때 늘 기댈 수 있었던 존재가 슬픔의 원인이 된다는 상상조차 못 한 경험 앞에 우리는 모두 모든 게 처음인 것 같은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어른의 감정은 , 표현의 차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낯설고 두렵기만 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어른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어른스럽게 위로해 주었다.

배려라는 행동으로.




아빠 덕분에 과분한 보살핌을 받는 한 해였다.

아빠 우리는 잘 살고 있을게, 늘 아빠가 말하던 것처럼.

그 말대로 내년에도 잘 살아볼게.


2025년이 아빠에게 부디 홀가분하게 어디든 날아갈 수 있었던 한 해였기를.


저의 낯선 마음을 읽어주셨던 독자분들께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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