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6개월
오래된 일이 된 것 같은 6개월 전 아빠와의 영원한 안녕.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정신없던 여름을 보내고 점차 일상으로 그렇게 평온한 하루를 보내게 된 건 가을이 깊어져서였다
아득하던 일상을 보내는 것엔 여러 가지 행정처리가 큰 몫을 차지했으며
엄마의 일상을 보다 더 잘 살피는 것이 자식인 우리들에겐 안팎으로 더 바쁘고 치열했던 이유였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실체를 알게 된 건 중학생 때, 우리에게 친구 같았던 다정한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세상이 멈출 줄 알았지만 외삼촌이 살아계시던 어제와 외삼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오늘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왜 세상이 안 멈추지?'
나는 죽음이라는 현상은 세상이 멈추는 이유가 되는 줄 알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세상을 멈추게 하는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슬픈 일이지만,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지냈다.
이후로 가족 중 나이 든 어르신들의 부고소식은 병이 깊어져, 나이가 들어, 그야말로 예측가능한 자연스러운 결과에 맞닿은 죽음이었기에 세상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산자들에겐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간단한 이치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나의 아빠가 그런 상황이었을 땐, 자연스러운 결과 중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걸 한 번도 생각 못했을까.
작년부터 시작한 운동이 하나 있었다. 일 년이 된 이 시점에도 항상 힘들기만 한 1시간의 운동이다.
대충 하더라도 센터엔 가있자 마음으로 다닌 게 1년. 아빠를 보내드리고 그렇게 한 달은 운동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평소처럼 운동을 나갔다. 지난 6개월 동안 그냥 꾸준히 한 유일한 것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전과 다름없이 한다는 건 생각보다 내가 나를 많이 위로했던 행동이었음을 알았다.
경제활동을 위한 일에 있어서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무던히 했던 반면, 운동만큼은 안간힘을 다해 나갔던 것이다. 본능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귀찮은 운동을 마무리하고 1월 1일을 엄마와 함께 맞이하고 싶어 몰래 친정을 찾았다.
이 추운 날 집에 있지 왜 왔냐는 엄마는 말과 달리 내 손을 잡고 차가운 것 같다며 연신 엄마온기를 내손에 내어주었다.
아빠는 이럴 때 내 손을 아빠가 앉아있던 아랫목이나 따뜻한 난로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는데 엄마와 아빠는 참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럴 땐 너무나 비슷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사람은 달라도 마음은 같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한동안 집에 들어서면 아빠가 없다는 것이 실감돼 마음이 내려앉았는데, 친정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빠의 부재보다 친정 특유의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아빠는 어딘가 놀러 나가 아직 귀가를 안 하신 그때의 그 분위기.
아늑한 공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1월 1일 해돋이 겸 아빠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평소 아빠가 즐겨드시던 것들을 이것저것 포장해 이른 시간 아빠의 사진이 있는 그곳에 평소처럼 음식을 종류별로 열어두고 아빠 뭐가 젤 맛있다고 할까, 지금 우리 보고 뭐라고 얘기했을까, 우리 형제들은 아빠가 했을법한 멘트들을 하며 키득키득 웃고 이런저런 우리들의 일상을 얘기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 이쯤 되면 조용한 걸 좋아하는 아빠가 우리한테 너희들은 할 말이 그렇게 많냐?라고 할 거 같다며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아빠 잘 있어, 또 올게"
죽음이라는 큰 슬픔을 겪고 영원한 부재를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과, 소중한 이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건 참 행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슬픔이 어떤 날엔 행운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새해 첫날 늦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아빠가 이 밥상을 보면 타박했을 거란 얘기를 하며 가족은 한참을 웃었다
"아빠 혹시 어디서 듣고 있는 거 아니야?"
"늬아빠 이제 잘 삐쳐서 이 말 들으면 지금쯤 화냈을걸?"
"버럭 했을까?"
"하하하하하하"
우리 가족의 웃음이 슬픔을 덮기 위함이 아닌 평소와 비슷한 호흡의 잔잔한 웃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